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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단절… 문민시대 군으로/권 국방 특별담화 왜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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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1세기를 내다보는 윤리선언/역사의식 강조… 고뇌끝에 결론
권영해 국방부장관의 2일 특별담화문은 「잘못된 과거는 냉철하게 반성하고 그릇된 현실은 과감히 고쳐 나감으로써 국민의 사랑과 신뢰받는 군대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제2의 창군선언,즉 「국민군」을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건군 45주년의 장년 한국군이 민간정부 출범이후 처음맞은 국군의 날을 계기로 「국민의,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군대」로 거듭나겠다는 결의를 다짐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그동안 끊임없이 되풀이돼 왔던 군의 정치개입 관행과 과감한 결별을 의미하는 65만 국군의 자기선언이자 엄숙한 대국민 약속이다.
이날 권 장관의 특별담화문은 국방일보를 비롯한 각종 군홍보 매체를 통해 전군에 보급될 계획으로 있어 앞으로 군 간부들에 대한 정신교육 등에서 현행 군인복무규율 이상의 구속력을 지닌 윤리헌장이나 행동강령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군에 숙지홍보
이번 권 장관의 메시지 전반에 담겨있는 두가지 핵심개념은 「개혁」과 「발전」으로 요약될 수 있지만 이들 둘 사이의 관계를 자세히 보면 과거에 대한 개혁보다는 오히려 미래를 향한 발전에 더 큰 비중이 실려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배경에는 군에 대한 개혁이 지나칠 경우 자칫 군의 사기가 저하되고 급기야 지휘체계까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최근의 경험과 그로인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군 스스로가 「국민의 군대」 「정의로운 군대」 「역사의식에 투철한 군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굴절된 과거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그 토대위에 새로운 좌표를 건설해야만 한다는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지난 봄 새 정부 출범이후다.
권 장관은 특히 자신의 사표가 반려된 지난 6월 김영삼대통령에게 이같은 계획을 보고했으며 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과 격려를 받기도 했다.
문민시대 「국군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선언문은 지난 8월10일 국방장관 직속의 육·해·공군 영관급 엘리트 장교 17명으로 「국방개혁연구위원회」가 발족되면서부터 본격 착수됐다.
국내외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로 구성된 이들 연구팀은 먼저 군 원로들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로부터 광범위한 여론을 수집한 뒤 다시 4,5명으로 기초 소위원회를 구성,문안작성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권 장관은 10여회에 걸친 문안심사와 난상토론을 벌였으며 지난달 27일에는 전직 장관과 참모총장 등 예비역 장성 70여명을 국방회관으로 초청,최종 「5천자 선언」에 담긴 대강의 줄거리를 설명하기도 했다.
○“대의충실” 약속
그동안 연구팀은 군의 과거를 무분별하게 비판만할 경우 자칫 적전분열상을 보일 수도 있다고 판단,지엽적인 시시비비에는 집착하지 않고 대의에만 충실한다는데 최종 의견을 모았다.
이번 특별담화문에 나타난 특징으로는 지금까지 군에서 나온 발표문이나 선언문과는 달리 군인의 역사의식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오직 반공 이념무장에만 주력해 왔던 한국의 군대가 급변하는 탈냉전의 국제질서 속에서 비로소 역사에 눈을 뜨게 됐다는 점은 비록 늦은 감은 있으나 커다란 자기인식과 변화로 평가될 수 있다.
「역사의식에 투철한 군인」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아는 군대」 등의 표현에서 나타나듯이 군도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끊임없이 역사의 거울에 비춰보는 성숙한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이번 담화문은 21세기를 바라보는 한국군의 윤리헌장이자 행동강령이라고 할 수 있다.
발표직전까지만 해도 「과거와의 단절선언」으로 알려져 왔던 이번 담화문은 그러나 전체 문장 어디에도 「단절」이라는 표현은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문안작성 과정에서 진통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담화문은 또 군의 과거를 언급하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음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신랄한 표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위상 스스로 설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권 장관의 담화문에는 군의 기본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는 「적과 우방」의 명확한 개념규정,예컨대 「누구에게 총부리를 겨눌 것인가」에 대한 언급이 배제돼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겨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선언이 정치적인 변혁기를 맞아 표출된 일시적인 제스처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소지도 없지 않으나 「군의 새 길과 위치」를 스스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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