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은 악화… 정부는 강경…/약국집단휴업 전격철회 배경·전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고질적 한국병」인식 확산에 굴복/보사부 의약분업추진 계속 불씨
대한약사회 25일 새벽 전국 12개 시·도 휴업지역의 지부장회의를 열어 약국휴업을 철회한 것은 강경한 정부대응과 비난여론에 굴복한 것으로 풀이된다.
약사회가 비판적인 여론을 무릅쓰고 휴업강행을 결정할 때부터 휴업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예상됐었으나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 정부의 초강경대응이 그 시점을 앞당긴 것이라 볼 수 있다.
정부로서는 24일 관계장관회의에서 밝힌바와 같이 집단이기주의를 문민정부가 내건 고질적인 한국병으로 진단하고 근원을 도려내는 수술이 없이는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처방을 내려 시범 케이스가 된 약국 전면휴업에 대한 대처강도가 약사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강력하고 강경할 수밖에 없었다.
약사회가 32일 경실련의 중재안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전면휴업을 결정한 것은 약사회의 정리된 의견이라기 보다는 강경약사들이 주도한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래 못갈것 예상
휴업을 결정한 22일밤 시·도지부장과 상임이사 연석회의도 청년약사들의 과격행동 때문에 장소를 옮겨 서울 방배동 제약회관에서 진행됐으며 휴업을 결의하기는 했으나 실행여부는 각 시·도지부의 결정에 맡겼던 것이 그같은 약사회 내부의 분위기를 드러낸 것이다.
이때문에 시·도지부별로 휴업을 결정했으면서도 일부 지역세서는 「개문 저지대」가 나서 약국영업을 방해하는 사태가 빚어졌으며 전북과 제주약사회는 대의원총회가 예정된 27일까지 휴업을 보류키로 결정하는 등 내부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더구나 시민·사회단체가 휴업철회를 요구하는 시민운동에 나서고 일반시민들도 휴업약국의 벽보를 찢는 등 노골적인 반발행동을 보여 극도로 악화된 여론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이같은 내·외부 사정으로 약사회의 휴업은 길어야 주말이 고비가 될 것으로 예측됐었으나 예상보다 큰 여론의 반발과 이같은 여론을 업은 정부의 즉각적인 강경대책으로 하루만에 끝나고 만 것이다.
약사회는 이번 사태로 집행부가 수사대상에 오른데다 내부분열상을 드러내 심한 후유증을 겪을 전망이다.
○분납 겹쳐 후유증
이미 경실련 중재안 합의에 책임을 지고 권경곤회장이 사퇴한 약사회는 27일 대의원총회를 열어 신임회장을 선출한다는 계획이지만 이번 사태로 입은 상처를 회복하고 조직을 재정비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태로 표출된 약사회 내부의 강·온대립을 어떻게 극복하고 약사법 개정안에 약사회의 입장을 반영하느냐가 새 집행부의 과제다.
약사회의 휴업강행과 하루만의 철회로 정부의 약사법 개정작업은 예정대로 추진될 전망이다.
약사회는 이미 22일 완전한 의약분업의 즉각실시와 한약조제권의 차별제한 철회 등을 골자로 한 독자적인 의견서를 제출해놓은 상태고 한의사협회도 약사의 한약조제 금지와 한약사제도 도입 등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해놓고 있다. 이에 따라 보사부는 이달 말까지 각 관련단체가 제출한 의견을 검토해야 약사법 개정안에 반영,정부안으로 확정된뒤 내달말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보사부는 입법예고된 개정안중 의약분업원칙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기본 골격을 변화시키지 않는 합리적인 의견은 적극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보사부의 약사법개정안 보안작업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현재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약사의 한약조제권 문제다.
○한약사제가 고비
약사회와 한의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완전히 배타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양 단체의 중재에 나섰던 실명은 합의됐던 한약사 도입을 적극 요구하고 있어 보사부가 고민하고 있다.
보사부 관계자는 이와관련,『한약사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은 어느 정도 조성된 것 같으나 양 단체의 합의가 무산된 상태여서 입법예고안대로 기존 한약취급약사에 한해 의약분업전까지 표준처방에 의해 한약을 조제토록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 한약사제도를 도입할 경우 완전한 의료의 이원화가 이루어져 인력수급에 문제가 있으며 자칫 새로운 분쟁의 불씨를 만들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결국 한약조제권분쟁은 장기적으로 의약분업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보사부의 입장이다.<이덕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