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에 민주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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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32년 건국한 이래 의회도 헌법도 없이 절대군주제를 고집해온 사우디아라비아에 처음으로「실질적인」 민주화 바람이 불고있다. 사우디의 파드 국왕은 지난해 국내외의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여「國政민주화案」을 발표했으며 지난달 20일에는 이에 따른구체적인 조치로 60명의 자문평의회 의원을 임명했다.
국정민주화案의 골자는 내정.외정.경제정책을 자문하고 정부의 정책수행을 감독하는 자문평의회를 설립해 정치개혁을 해나가겠다는것이다. 걸프전쟁후 드높아진 민주화 요구,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의 빌 클린턴 정권과의 관계,재정위기에 따른 국내의 불안해소등여러 요인들이 파드 국왕으로 하여금 민주화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했다는 분석이다.
이 안은 18년전에도 발표된 바 있다.3대째인 파이잘 국왕이암살당한 지난 75년,자문평의회 설치.지방자치제도 정비등이 처음으로 발표됐다.
이슬람 과격파에 의한 메카 습격사건이 일어난 이듬해인 80년에도 비슷한 정치개혁안이 공표됐으나 어느 것 하나 실현된 것은없다. 그러나 이번 민주화 바람은 예전과는 다르다.「사막의 폭풍」이 몰고온 이 바람은 파드 국왕도 거스를 수 없을 만큼 드세다. 91년 발발한 걸프전쟁때「사막의 폭풍」작전을 전개한 미군병사들 속에는 상당수의 여군이 끼여있었으며 이는 엄격한 이슬람 계율속에 살아가는 사우디 국민들에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던져주었다.또 이 충격파는 反체제파들의 민주화 의지를 자극시켰다. 파드국왕의 민주화 수용은 애초부터 순조롭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올초 지식인 그룹이 이슬람 인권옹호위원회를 결성했으나 정부측은 위원회에 참여한 사람들을 모두 공직에서 추방시키고위원회 소속 법률가의 사무실을 폐쇄시키는등 엄중한 조치를 취했다. 사우디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인권탄압」이라는 국제적 비판을 초래했으며 親美 정책을 취해야하는 사우디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파드 국왕의 이번 조치는 악화된 국제여론에 밀린「窮餘之策」이란 시각도 있다.
사우디는 또 걸프전쟁후 원유가격의 하락,전쟁비용 부담등으로 엄청난 재정난에 빠져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1일 『사우디는 거액의 무기구입비등으로 외화보유액이 바닥나 있다』고 보도했다.
파드 국왕은 이에 대해『중상모략』이라 비난했지만 서방외교측은『재정난은 사우디 국내에서 각종 보조금에 영향을 미쳐 국왕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국왕이 민주개혁의 의사를 나타낼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金國振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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