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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낯선 땅,낯선 사람(57) 길남이 나간 문쪽을 명국은 멍한 눈으로 내다보며 앉아 있었다.그리고 천천히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야 있겠어.사람이 좋은 일도 아닌걸 가지고 미리 넘겨짚고 그러는거 아니지.
도망갔던 태복이 끌려 왔을 때의 일을 명국은 떠올렸다.그랬었지.셋이서 바다를 헤엄쳐 건너겠다면서 밤에 도망을 갔었어.내가빠지겠다고 했을 때 제일 섭섭해 한건 삼식이었지 아마.
여기서 낙반사고나서 죽으나 매맞아 죽으나.
여기 있어도 죽는 건 마찬가지요.소리치던 삼식이 목소리가 어제인 듯 귓가에 울린다.
인명은 재천이라더라.뻔한 개죽음은 난 못한다.명국의 말에 태복이 말했었다.너는 그래 우리가 가는게 개죽음으로 밖에 안 보이냐? 사람이 어떻게 뛰다가라도 죽어야지 앉아서 죽냐? 그랬던태복은 잡혀서 왔고 삼식이는 죽어 뱃바닥에 누워서 돌아왔었다.
거적에 둘둘 말려서 왔었다.삼식이 시신이 타던 날,일하러 나가면서 화장터가 있는 나카지마를 바라보았을 때 울컥울컥 치밀던 분노를 명국은 잊지 못하고 있었다.너희들 만 잘나서 도망을 치고 우린 못나서 여기 엎드려 땅강아지처럼 탄이나 캔다고는 생각하지 말아라.사람이 참고 견디는게 못나서만은 아니란 말이다.
『무슨 생각을 하우? 성님은….』 덕호가 명국의 얼굴을 보며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네.갑자기 전에 여기 함께 있던 사람들생각이 나서.』 『누구 말인데유?』 『자넨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때 자네야 저 위 숙소에 있지 않았어.일본사람들이랑.』 이 사람에게 태복이 이야기를 해서 뭘 하겠나 싶어 명국은 입을 다문다.말 좋아하는 친구가 또 뭐라고 입빠른 소리라도 했다가 저새로 온 녀석이 알기나 하면 그런 난감한 일이 또 있을까 싶은것이다. 덕호가 부시럭거리며 일어났다.자기 방으로 돌아가며 그는 걱정스레 명국을 내려다본다.
『정말 괜찮은거유? 저녁도 굶고…내일 일 나가는 거는 아무래도 어렵겠수.』 『그거야 내일 일어나 보면 알겠지.』 덕호가 물그릇을 가지고 돌아가고 나자 명국은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옆에 와 자리를 펴는 길남의 모습을 명국은 가만히 올려다보았다.맞어.이 얼굴,누가 봐도 태복이 아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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