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첫일과/실명제 챙기기/비서실장·경제수석 매일 「동향」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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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부도업체·통화량·증시등 “예의 주시”/부총리·재무장관 수시로 불러 점검도
청와대는 요즈음 「실명제 동향보고」로 아침을 시작한다.
김영삼대통령이 아침 7시 반 집무실로 출근하면 박관용 비서실장·박재윤 경제수석이 곧 뒤따라 들어가 실명제 실시이후 하루 실물경제상황 등을 보고하고 평가하는 회의를 매일 갖고 있다.
김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8월12일 실명제 전격단행이후 줄곧 계속된 「일일 동향보고회의」에 올려지는 사안은 부도업체수·통화추이 등 금융시장 동향에서 주식·부동산 중소업체를 포함한 기업,그리고 언론의 보도내용 등 주요 분야를 담고 있다. 대통령으로 서는 결단도 스스로 내린만큼 국정수행관심의 최우선순위를 실명제 정착에 두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바빠진 폭은 청와대 경제비서실이다. 경제비서실 8개분야중 재정금융·산업·경제제도 등 3개분야 담당비서관들은 해당경제부처·금융기관들은 물론 있을 만한 곳이면 어디에서든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챙기느라 분주하다. 휴일도 없도 심야근무는 보통인데다 새벽출근해 7시에는 보고를 위한 사전점검회의를 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조찬약속이 있으면 보고시간이 늦춰지기는 해도 지금까지 거른 날은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실명제 실시직후에는 조금만 부도가 늘어도 그것이 어떤 신호가 아니냐며 촉각을 세우기도 했으나 시행 한달이 가까워지면서 그렇게 특기할 일은 별반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현재는 계속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가 문제겠지만 경제비서실에서는 현재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가·차명의 실명의무화기간이 끝나는 10월12일이후를 주시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는 키를 틀어 실명제시행 방향을 조정할 때는 아니라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중소·영세기업들의 자금난과 관련,「실질적인 지원」을 거듭 강조한 것 외에는 일일동향보고에서 어떤 구체적 견해를 나타냈는가에 대해서는 바깥으로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주변에서는 아직 「원칙대로 시행」이라는 대통령 생각에 변화를 찾기 힘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주 청와대 고위인사의 『실명제에 대한 추가 보완책을 정부로서는 더 이상 고려치 않고 있다』는 언급이 바로 이런 분위기와 연관된 듯하다.
김 대통령은 실명제관련 동향파악에 대해 여러 채널을 유지,박 경제수석외에도 이경식부총리·홍재형 재무장관을 그동안 서너차례 독대해가며 필요한 사안을 챙기고 있다.
그러나 경제계에서는 대통령의 실명제에 관한 높은 관심도 좋지만 실명제 못지않게 실명제실시이후 벌어진 그동안의 상황전개 과정에 대해서도 우려가 적지않다. 실명제가 시행된지 이미 한달이 가까워 졌으면 정부로선 어느쪽이던 앞으로의 경제운용에 대해 정리된 방향제시가 있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엄청난 충격과 변수가 생겼다면 당연히 경제정책노선의 재검토와 새로운 조율이 필요한 데 그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경제정책을 움직이는 사람들마저 얼어붙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경제정책의 책임도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귀착되는 만큼 경직된 상황조성의 상당부분을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는 시각이다.<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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