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맞는 증언에 무뎌진 추궁/파국 치닫는 국방위 국정조사(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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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 “F­16의혹 노씨에 확인” 요구하며 불참
국방위의 율곡사업 국정조사는 증인·참고인 39명중 겨우 5명에 대한 신문을 마친 6일 저녁부터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다.
민주당측은 권영해 국방부장관 등의 증언을 앞둔 6일 저녁 민자당측에 「노태우 전 대통령 출석보장」을 요구하며 조사장에 나오지 않았다. 민자당측도 『전직대통령 소환은 예정에도 없었으니 합의된 조사일정부터 진행하자』고 맞섰다. 민주당이 국정조사기간중 전직대통령 증인소환을 요구할 가능성은 충분히 예견됐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자신들의 요구로 채택된 증인들의 증언청취까지 거부해가며 전직대통령 조사를 들고 나온데는 6일 서울 구치소에서 있었던 이상훈·이종구 전 국방장관 등에 대한 조사에서 당초 기대했던 답변을 끌어내지 못한 초조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차세대전투기로 FA­18을 주장했던 이상훈 전 장관의 퇴임이 기종변경과 관련있고,이종우 전 장관으로부터는 FA­16으로 기종을 바꾼것이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확인하겠다는 전략으로 이들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이상훈 전 장관은 『본인의 퇴임은 보안사 민간인 사찰파동에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청와대에 비췄기 때문』이라고 말해 민주당의원들을 실망시켰다.
또 이종구 전 장관도 『FA­18이 성능면에서 다소 낫지만 가격때문에 FA­16으로 바꾸자는 실무자들의 건의를 청와대에 보고해 대통령 결재를 얻었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민주당측의 공격을 멀리서부터 차단시켜 버렸다.
민주당의원들은 감사원과 국방부 문서검증에서 89년 12월 당시 청와대 김종휘 외교안보수석 비서관이 이상훈 국방장관에게 찾아가 『두 기종의 장·단점을 비교해 대통령에게 보고해 달라』고 말한 사실을 확인했다. 민주당은 이를 근거로 기종변경에 청와대의 압력이나 지시를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민주당의원 5명이 이 부분을 계속 중복질의했으나 『김 수석이 찾아온 것은 사실이나 우리 두사람의 관계상 그것은 지시라기 보다 부탁에 가까웠다』고 청와대의 압력설을 부인했디.
여기다가 자신의 공군참모총장 전격퇴임이 FA­18을 고집한데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던 정용후씨가 자신이 보안사의 조사를 받고 전역한 것은 부인이 진급대상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도 작용했음을 시인해 버려 민주당의원들을 맥풀리게 했다. 또 한주석 전 공군참모총장도 『FA­18과 F­16이 위험할 정도의 성능차이가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판단이며 오히려 F­16이 전투기의 생명인 기동성에서는 FA­18보다 낫다』고 증언했다. 이는 『성능면에서 훨씬 뒤떨어진 F­16을 선정한데는 청와대측이 제작사로부터 로비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민주당의 가설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이다.
이에따라 민주당의원들은 한 전 총장의 위증혐의를 지적해가며 진술을 번복시키려 했으나 끝내 바라던 답변을 얻어내지 못했다.
결국 이같은 증인들의 일관된 주장이 계속되는 한 8일까지 율곡사업관련 증인신문을 해봐도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 필요성을 지적할 결정적 증거를 확보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이 민주당이 나머지 증인들의 증언청취거부 결정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이상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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