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과 시 구수한 얘기로 담아|『미당 산문…』서정주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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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강제에도 얽매이는 일이 없이, 또 사상사 속의 어떤 유파나 개인에게도 편승하는 일이 없이, 먼저 하늘만큼 훤출한 자기자유의 능동적인 관찰력과 자기류의 독자적인 느낌을 가지고 사상의 선택과 그 수립을 전담하라는 것이다.』
원로시인 서정주씨(78)가 산문집 『미당 산문-문학을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에게』(민음사간)를 펴냈다. 『후진들에게 문학도이기 이 전에 사람으로서 마음써야 할 일들을 철학과 역사적 관점에서 말해주고 싶었다』는 서씨는 한평생 시의 길만 걸어온 시단 최원로로 서 자신의 삵과 시를 옛날 이야기하듯 들려주며 「하늘만큼 훤출한 정신의 완전한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옛날 옛적에, 고랫(고려?)적에, 호랑이가 담배를 먹던 적에, 하늘에서 새 금 동아줄이 어린애들이나 좋은 사람들한테는 언제나 소원만 하면 아직도 술술 잘 내려오고, 또 그걸 단단히만 붙들어 잡고 매달리면 언제든지 하늘이 잘 끌어 올려 썩 잘 숨져주던 시절 에,…』
『숨막히게 노련한 언어구사, 감정상태의 기막히게 절묘한 재현능력은 우리를 눈멀게 한다」(문학평론가 염무웅)는 서씨 시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산문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그의 산문 역시 시만큼이나 평범하면서도 주술적 힘을 갖는 언어들로 배열되고 있다. 위 옛날 이야기 모두 부분인용에서 볼 수 있듯 부사와 의성·의태어의 중첩사용, 어순의 적절한 배합, 세상을 처음 접했을 때의 원초적 탄성 같은 사투리의 음향 등으로 하여 그의 산문 역시 문법이라는 언어과학을 훤출하게 뛰어 넘는다.
또 무소불위의 인물인지, 사물인지, 장소인지, 아무튼 「거시기」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며 서씨는 산문공간에서 마저도 시공을 없 애 버린다. 과학적 인식의 블랙홀인 「거시기」를 문장 곳곳에 숨기며 서씨는 우리를 신화적·주술적 세계로 데려가 만물조응·혼교의 세계를 보여준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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