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 대통령/철벽보안/「007작전」 뺨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담당수석·가족도 모르게 전격 결행/군수뇌경질·실명제등 잇단 “깜짝 쇼”/「중대발표」도 일단 새나가면 없었던일로
지난 12일 저녁의 실명제 전격실시 발표는 김영삼대통령의 철벽 보안의 진수를 다시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담당 수석비서관인 박재윤 경제수석조차 까맣게 몰랐다. 이는 지난 3월 군부 인사때 정종욱 외교안보수석이 몰랐던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실명제 실시는 엄청난 자료수집,법·제도 정비 등 오랜 시일의 준비와 엄청난 부수작업이 요구되는 전문적인 일이다. 그런만큼 경제수석의 개입은 불가피할듯 한데 그렇지 않았다. 하기야 측근중의 측근으로 김 대통령을 매일 수차례 독대하는 박관용 비서실장조차 발표 불가 4시간전에야 상황을 알았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표정관리 가르쳐
박 실장이나 박 수석은 철저한 보안유지야말로 실명제 시행의 성패를 좌우할 중대사안이라면서 자기들의 소외를 이해는 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도 대통령의 철벽보안에 혀를 내두른다.
역대 대통령들도 철저보안을 자랑하며 중대사항을 전격 처리했지만 한 며칠 지나면 『나는 사실 알았다』고 하는 참모와 요인들이 나오기 일쑤였다. 자기과시를 위한 홍보인데 이번에는 1주일이 지나도 『나도 몰랐다』는 요인들의 볼멘소리만 나오고있다. 김 대통령의 20년 측근이자 인척인 홍인길 총무수석 같은이는 사전인지 사실을 극구 부인하며 해명까지 요구할 정도다. 대통령가족들도 까맣게 몰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새정부 출범 이튿날 기자와 만난 김 대통령은 각료 인선내용을 자랑하면서 그 못지않게 인선과정의 보안유지를 자랑스러워했다. 김 대통령은 그 많은 눈길속에 대상자들과 접촉,몇시간씩 대화를 나눈뒤 후보자를 골랐음에도 일절 새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점찍은 대상자를 한 장소로 불러낸 다음 대기시킨 측근차에 옮겨 태워 데려오도록 했다고 한다. 그는 상당시간 시험하는 대화끝에 후보자가 마음에 들면 대상직책을 알린후 『그러나 사전에 누설되면 없던 일로 하자』고 보안을 당부했다. 부안에게도 보안을 위한 표정관리 방법까지 가르쳤다는 후문이다.
이같은 철통보안 때문에 김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며칠만에 서울시장·보사부장관 등에 대한 자질·자격시비를 야기해 이들을 갈아치워야 했다. 그의 검증없는 인사스타일에 대한 집중적인 비판이 쏟아졌으나 철벽보안 고수 자세에는 변함이 없다.
육군참모총장·기무사령관의 전격경질을 비롯,인사·정책결정에서 철저한 보안원칙은 예외가 없었다.
○야당시절 몸에배
보안사령관 출신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무색케 하는 김 대통령의 보안의식에 대해 『오랜 야당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자금·조직·투쟁방향 어느하나 한치의 틈새가 벌어지면 일이 뒤틀리기 십상이었던 야당 투사사절도 「보안」이 생활화가 됐다는 얘기다. 나아가 상대의 보안허점을 적절히 활용,정권을 쟁취해낸 경험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대통령이 이렇게 보안을 강조하다 보니 비서실 전체가 늘 보안비상체제에 들어가 있다.
비서관들은 어떤 물음에도 『발표때까진 말할 수 없다』고 비켜선다. 설령 말을 하더라도 미리 새나가면 없던 일로 되거나 무기연기 시킬 터이니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사족을 꼭단다.
박 비서실장은 아예 「보안반장」을 겸한듯 하다.
박 실장은 수석비서관과 출입기자에게 대통령의 일주일치 일정을 사전통보해 주던 관례를 철폐했다.
이것은 주요시책 등이 관계자들이 국민들간에 진지한 토론과정이나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고 나오는 단점도 있다. 그에 따른 부작용의 소지가 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의외의 부작용도
실제 갑작스런 사태의 충격으로 인한 혼란이 있을수 있으나 김 대통령은 이를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19일 이경재대변인의 어이없는 중대발표 소동도 깜짝쇼 기류와 아주 무관하지만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김 대통령은 보도진이 19일의 경부고속전철관련 발표사실을 알고있다는 보고를 18일 오후에 받고 교통장관의 보고일정을 취소시켰으며 이 대변인은 이 과정에서 보도유예약속을 깬 일부 출입기자들에게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국가경영에 있어 보안은 중요한 것이지만 필요이상의 강조와 빈번한 행사에 의회의 부작용도 없지 않다는 반증이다.<김현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