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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측근세력|당 기관(6)|"차세대 핵심" 권희경·강주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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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한 노동당의 「부장급」가운데 권희경·강주일·권민준·강순희·김철명도 김정일의 주요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부장급 실세들인 장성택·오극렬·문성술·윤승관 등에 비하면 한급 떨어지나 김정일을 실무적으로 보좌하는 점에서 「숨은 실력자들」로 꼽히고 있다.
이들 중 권희경·강주일은 대남 부문의 두 기둥. 당 조사부장 권희경은 15년여 동안 소련대사를 역임한 외교베테랑이다(72년1월∼76년6월, 80년2월∼90년2월). 소련대사로 일하던 시기의 북소관계를 염두에 둘 때 그의 비중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 중간의 3년반은 정무원 외교부 부부장이었다. 권은 80년 10월의 6차 당 대회에서 당 중앙위 후보위원으로, 88년3월의 당 중앙위 6기13차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당내 기반도 확고하다.
일제 때 빨찌산 조직과 연계된 「혜산사건」으로 유명해진 권영백의 조카인 그는 정치성분이 좋은데다 능력도 뛰어나 확고한 입지를 마련했다.
권은 소련대사를 그만둔 직후부터 당 조사부장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대남정보를 종합수집, 판단해 대남비서 김용정에게 보고하는「대외정보조사 책임자」자리다.
그가 오랫동안 소련대사를 역임해 대외정보의 흐름에 밝고 수집· 분석 능력도 뛰어나 발탁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사시절 매년 두세 차례 평양에 귀환해 각종 고급정보를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의 대남부문 측근으로는 당 통일전선부장 강주일을 꼽을 수 있다.
윤기복이 통전부장일 때 그는 한시해와 함께 부부장을 맡아왔다. 대남 사업 부문에서 안병수·전금철보다 후배인데도 통전부장으로 전격 발탁된 것은 김정일과의 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강은 김일성 일가의 친척으로 학창시절부터 김정일과 친한 사이였으며 김정일보다 나이가 위이고 대학선배로 전해져 있다. 눈에 띄는 대외활동은 78년의 일본방문(평양예술단 고문)과 86년4월 이래의 조선아시아 아프리카 단결위원회 부위원장 활동이다.
강이 당 중앙위 후보위원도 아니면서 이례적으로 당 부장으로 승진한 것은 눈에 띄는 것이나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이 청년사업부장일 때 후보위원이 아니었던 전례에 비춰볼 때 강의 경우도 김정일의 최 측근만 누리는 예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당 국제부 부부장 권민준은 50년대 중반부터 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조직부지도원으로 활동한 청년조직 간부출신이다. 57년에는 모스크바 공주학교에서 1년간 수학했으며 58년부터 김일성 종합대학 민주지도원으로 일했다.
권은 대학시절부터 외국어 실력이 남달라 민청간부 자격으로 일찍부터 대외활동에 적극 나설 수 있었다. 61년부터 민청부위원장격 학생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한 그는 북한대표로 국제 민청본부가 있던 프라하에 파견되기도 했는데 이때 김정일과의 인연이 싹텄다. 63년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 민청행사에 참가한 김정일을 잘 보필했기 때문이다.
그는 귀국 후 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민청 후신) 간부를 거쳐 당 국제부 지도원으로 당 간부생활을 시작했다. 김정일의 입김으로 국제부 과장으로 승진한 그는 73년7월부터 정무원 외교부 부부장 겸 주유엔 대표부에서 활동하기에 이른다.
그는 73년10월 제28차 유엔총회 대표로 나선이래 77년11월 해임 때까지 북한유엔대표단 부단장으로 유엔무대에서 활약했다. 특히 75년10월 제30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 결의(서방측안과 공산측 안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둘 다 가결된 해프닝 발생)가 나올 때 선두에서 활약했다.
전 북한고위관리에 따르면 『당시 유엔파견 북한대표단장은 정무원 외교부 제1부부장이 종목이었지만 실제론 김정일-권민준 외교라인이 가동됐다』고 한다.
권이 77년 11월 귀국하자 김정일은 선전부로 데려다 부부장에 앉혔다. 그 뒤 그는 79년2월에 당 연락부 부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에 있을 때 79년 2월17일∼3월14일 진행된 「변칙」남북대화의 노동당 수석대표로 참가한 경력도 갖고 있다. 그 뒤 국제부 부부장으로 임명되어 최근까지 활발한 해외순방외교를 필치고 있다. 다만 당중앙위원회 진출은 다소 늦어져 92년12월에야 후보위원으로 선출됐다.
한편 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 강순희는 84년11월부터 당 제2경제부장(현 경공업부장, 이에 앞서 정무원 경공업위원회 부위원장 역임)을 맡다가 87년9월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고 이례적으로 제1부부장으로 나앉았다. 그녀는 김경희의 김일성 종합대학 선배로 아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부장급인 강은 85년7월 당 부장시절 김정일의 경공업제품전시장 현지지도를 수행하는 등 김정일의 「여성참모」로 활약해왔다. 84년12월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된 그녀는 북한여성계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끝으로 당 주체과학부장 김철명은 김정일의 정책구상·이론작업·저작집필 때 의견을 개진하고 가필·조언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김일성 시대에 황장엽이 맡던 역할을 김정일 시대에 그가 대신하는 셈이다. 그는 선전선동부 지도원시절 김정일과 함께 일하면서 인연을 함께 했고 이론선전부문 과장을 거쳐 선전선동부에서 부부장까지 지냈다.
전사자가족 출신으로 두뇌가 비상하고 이론에 밝은 그는 당 중앙위원(86년12월)외에도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위원(90년5월)등의 직책도 맡아왔다. 87년12월 이후 현재까지 사회과학자협회 제1부위원장도 겸직하고 있으며(위원장 황장엽 당비서) 88년4월이래 주체과학원장으로 일해왔고 지금은 이 자리를 이지수에게 넘겨준 상태다.
당 주체과학부는 주체과학원에 대한 당적 지도를 책임지면서 주체사상과 관련된 모든 이론·실천과제를 담당하는 부서다. 따라서 주체과학원은 흔히 알려진 사회과학원과는 다른 별도의 연구기관이다. 사회과학원장은 현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이 줄곧 맡아오다 지금은 저명한 역사학자 김석형에게로 넘어갔다. <통일부=김국후 차장·유영구-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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