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위기 겨우 넘긴 「EMS」 앞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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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환율 변동폭 완화… 신뢰 큰 타격/“체제고수”불구 통화통합엔 암운
유럽통화제도(EMS)를 존폐 직전의 위기로 까지 몰고갔던 유럽외환 시장의 대혼란이 환율변동폭 완화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EMS에 정해진 환율변동 하한선까지 떨어졌던 프랑스 프랑화·벨기에 프랑화·스페인 페세타화·포르투갈 에스쿠도화·덴마크 크로네화 등 5개국 통화는 이날도 런던·프랑크푸르트·파리 등 유럽 주요 외환시장에서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EMS 자체의 폐지나 잠정중단,기준 환율 재조정,독일 마르크화의 EMS 잠정탈퇴 등 호재를 기대했던 환투기꾼들의 공세는 환율 변동폭의 대폭 확대를 골자로 한 유럽공동체(EC) 차원의 쇼크요법이 나옴에 따라 약간 둔화됐다는 지적이다.
EC 12개 회원국 재무장관들은 각국 통화간 기준환율은 그대로 둔채 상하 2.25%(페세타화와 에스쿠도화는 6%)인 EMS의 환율변동 허용폭을 15%로 잠정 확대하는 비상처방을 마련했다. 즉 지금까지는 EMS에 속해 있는 9개국 통화(영국·이탈리아 잠정 탈퇴,그리스 미가입)의 환율이 기준환율을 중심으로 상하 2.25%,즉 총 4.5% 범위내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제한돼 있었으나 2일부터는 그 변동폭이 30%로 무려 7배 가까이나 늘어난 것이다.
이번 외환시장 혼란에서 태풍의 눈이 됐던 프랑스 프랑화의 대독일 마르크화 환율의 경우 마르크당 3.3538프랑인 기준환율에는 변동이 없지만 변동 허용폭은 종전의 마르크당 3.2792∼3.4305프랑에서 2.8381∼3.8948프랑으로 크게 늘어나게 됐다. 비상조치 발효 첫날인 2일에도 유럽외환 시장에서 프랑스 프랑화는 지난달 30일의 마르크당 3.43프랑에서 3.51 프랑선까지 떨어지는 폭락세를 거듭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EC는 유럽통화 통합의 토대로서 EMS의 붕괴위기를 일단 모면하게 됐다. 특히 프랑스는 무리를 해가며 고수하고 있는 프랑화 강세정책을 공식적으로는 허물지 않으면서 경제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추가 인하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여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일 파리 증권시장의 폭등세는 투자자들의 이같은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불수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EMS의 신뢰성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환율변동폭을 상하 15%까지 허용한 것은 사실상의 환율변동에 대한 제한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외환시장 위기에 따라 영국 파운드화와 이탈리아 리라화가 EMS의 환율조정장치(ERM)에서 탈퇴한데 이어 나머지 통화들에 대해서도 사실상의 환율 자유변동을 허용함으로써 EC각국간 통화안정과 통화 단일화의 토대구축을 목표로한 EMS체제는 이날로 사실상 붕괴됐다는 극단적 분석마저 제기되고 있다.
EC각국은 이번 조치의 한시성을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시장환율이 기준환율에 접근하게 되면 다시 원래상태로 복귀할 것이며,적어도 유럽 중앙은행의 전신이랄수 있는 유럽통화기구(EMI) 2단계 통화 통합이 시작되는 내년 1월1일 이전에는 원상복귀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장상황에 달린 문제다. 충격적 조치로 일단 투기세는 주춤해졌지만 언제 다시 재발할지 알수 없는 상태다. 영국·이탈리아가 EMS에서 탈퇴하면서 잠정조치임을 강조했지만 거의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때 일단 넓어진 환율변동폭이 쉽사리 원상태로 좁혀지겠느냐는 비관적 전망이 강하다. EMS사상 초유의 충격조치로 EC는 일단 EMS체제 고수라는 명분은 확보했지만 유럽통화통합의 길에서는 더욱 멀어지게 됐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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