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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심의→졸속입법 악순환/시행착오 왜 거듭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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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토초세 60년대도 한차례 파문 전력/법윤리보다 정치적 이해 더 크게 작용/국회기능 제대로 행사돼야 시정가능
최근 토지초과이득세 파문으로 입법심의의 성실에 대해 강한 비판이 새삼 제기되고 있다. 토초세가 이미 60년대에도 한차례 파문을 일으켰던 것을 알고나면 정부와 국회의 졸속입법 자세가 어느 정도인지 확연해진다.
이 법안이 기득권층의 조직적 반발에 거듭 좌절한 것이 아니라면 정부와 국회가 터무니없는 탁상 입법을 반복한 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는 3공화국 시절인 67년 11월29일 「부동산투기 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토지양도차익세」와 「공지차익세」를 물리기로 했다. 토지양도차익세는 85년 소득세로 들어가 오늘날의 양도세가 되어 살아 있다. 공지차익세는 공지에 대해 2년마다 정부가 고시한 시가의 차액만큼 차익이 있는 것으로 보고 세금을 매기는 것이니까 오늘날의 토초세와 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이 공지차익세는 시행도 하기전에 입법 1백일만인 68년 3월7일 폐기됐다.
양도세도 시행 3년만인 71년 1월13일 14개항에 걸쳐 면세범위를 추가하도록 개정하는 시행착오를 인정해야 했다.
이런 졸속입법은 정치인들이 이해관계에 개입될 때 가장 위험하다. 현재 대통령임기와 국회의원 임기가 달라 각종 선거가 들쭉날쭉 실시되게 된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법률적 원칙이나 일관성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이해관계를 절충해 헌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법이나 현재 실시되고 있는 공직자 윤리법도 마찬가지다.
이런 법안은 여소야대 시절에 많았다. 세입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전세계약을 2년단위로 하도록 한 주택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이 89년말 만들어진 뒤 전세값이 폭등했다. 모든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된 것이다.
통상임금이 아닌 상여금을 포함한 평균임금의 70%를 휴업수당으로 지급토록 함으로써 일하는 사람이 휴업중인 사람보다 적은 돈을 받게 만드는 근로기준법,동일노동의 개념을 정의하지도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지도 않아 시행 자체를 막아놓은 남녀고용 평등법 등은 정부내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치권의 이해가 아니라 정부부처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잘못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엔 이해관계가 다른 부처가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사건건 반대하게 돼 진통을 겪게 된다고 한다.
지난 임시국회에서는 「산림조합법」을 고쳐 임업협동조합도 농·수·축협처럼 신용사업을 할수 있도록 했다. 국무회의에서는 신용사업을 하려면 재무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규정했으나 농림수산위에서 농·축·수협과의 형평성을 따진 의원들의 질문에 소관부처 입장만 얘기하는 바람에 그 규정이 삭제된 후 통과됐다.
특정 개인을 위한 것도 있다. 박정희대통령 시절 아들의 입학시기와 맞춰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차례로 입시제도가 추첨제·평준화로 바뀐것도 그런 예다. 전두환 대통령시절 대학원을 졸업한 학생에게 6개월 훈련만 받으면 소위로 예편하게 했던 소위 「석사장교」 제도도 전 대통령과 노태우대통령의 아들이 차례로 석사장료로 예편한 뒤 없어져 그런 의혹을 사고 있다.
졸속입법의 대명사는 역시 「비대의기관」이 한꺼번에 법을 량산한 것이다. 5·16직후 국가재건 최고회의나 유신때의 비상국무회의,5·17이후 국보위 등이 그것이다. 올해 정부가 정기국회에 내놓을 2백여건의 개정안 중에는 이 비대의기관에서 제정 또는 개정된 법률이 90여건이나 된다.
이처럼 엉터리 법을 양산한 것은 국회와 국회의원들이 국회의 제1기능인 입법심의를 대수롭지 않게 인식해온 타성 때문이라는게 법률가들의 일치된 견해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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