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서 잔치 편하긴 하지만…(속 자,이제는…:1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사정한파속 회갑·약혼·돌 예약몰려/손수 음식장만 조촐히 뜻새겼으면
26일 오후 6시쯤 K씨(61)의 회갑연이 열린 서울 Z호텔의 고급연회장인 S홀.
「○○동창회」 등 리번이 달린 대형 화환들로 비좁아진 입구에서는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액수 미상의 돈봉투를 K씨의 아들인 듯한 30대의 청년에게 건네주는 대열이 장사진을 이뤘다.
친척석·동창석 등 네가지로 구분된 좌석에 나누어 앉은 하객 1백20여명은 서너차례 뷔페식단을 오가며 식탁에 놓은 맥주와 양주를 즐긴다.<관계기사 23면>
회갑연은 산해진미로 짜인 1인당 2만원짜리 뷔페식사가 절반가량 고스란히 남은채 오후 8시쯤 1인조 밴드가 들어서며 무도장으로 변했다.
밴드의 경쾌한 반주에 맞춰 고고풍의 춤을 추는 참석자들은 자신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연회장 한가운데 마련된 1m 높이의 독수리상 얼음조각이 녹아 내리는 줄도 몰랐다.
『복잡하고 번거로운 잔치를 무엇하러 집에서 합니까』 『손님 부조로 연회비 4백원을 치르고도 2백원∼3백원은 남는데….』
이 호텔 연회부에 근무하는 A씨(32)는 『사정한파로 정부행사가 줄어든 대신 회갑·약혼식·돌 등 집안잔치는 오히려 크게 늘어 10월말까지 이미 예약이 끝났고 보통 2∼3개월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귀띔한다.
거센 사정바람 속에서 고급 호텔들은 연일 줄을 잇는 사람들의 집안잔치로 붐빈다.
호텔의 편의성도 탓할 수 없고 일부층의 과시욕도 손가락질 할수만은 없다.
그러나 부모님의 장수 건강을 바라고 혼례의 순수함을 기약하며 돌아기의 앞날을 축원하는 참뜻을 이제는 생각해 볼때가 아닐까.<김동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