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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계이야기

위그선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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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배가 있다면 어떨까? 만화 속 하록 선장의 우주 해적선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 속에도 그런 배가 있다. 바로 위그(WIG)선이다.

 위그선은 강이나 바다 위를 2~5m 높이로 수면에 닿을 듯 말 듯 날아다닌다. 이것이 나는 원리는 비행기와 같다. 원래 움직이는 물체에 약간의 각을 준 날개를 달고, 앞쪽으로 빠르게 나가면 날개 위와 아래쪽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압력의 차이가 생기고 위쪽 방향으로 날개를 뜨게 하는 힘이 생긴다. 이 힘을 양력(揚力)이라고 한다. 위그선이나 비행기나 모두 이 양력을 이용해 날 수 있다.

 그런데 위그선은 보통 비행기와는 또 다른 힘을 이용한다. 물 위를 낮게 날면서 ‘해면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다. 수면 위 5m 이내의 저공비행을 하면 날개와 수면 사이에 공기가 갇히게 된다. 이 공기가 마치 쿠션처럼 날개를 받쳐주게 되고, 이를 통해 양력을 훨씬 쉽게 얻게 돼 효율적으로 비행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해면 효과다. 보통 항공기도 5m 이내로 저공비행하면 해면 효과를 누릴 수는 있지만 그러다 수면에 닿게 되면 비행기는 곧바로 사고로 이어진다. 반면 위그선은 물에 뜰 수 있도록 설계된 선박이기 때문에 안전하게 낮게 날 수 있는 것이다. 이착륙도 활주로가 아닌 물에서 한다. 그래서 용어도 이착륙(離着陸)이 아닌 이착수(離着水) 다.

 날개를 단 비행기 모양에 아랫부분엔 배를 붙여놓아 배부른 비행기처럼 생긴 이 위그선을 배라고 해야 할지 비행기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국제해사기구(IMO)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오랜 고심 끝에 선박으로 결론을 내림으로써 결국 선박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위그선은 이렇게 정체성을 찾는 데도 곡절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도 저도 아닌 이 배가 이젠 분명한 존재 이유를 찾아가고 있다. 이 배는 원래 러시아에서 군용으로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후 레저용 등 다양한 목적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인승 규모의 대형 여객 및 화물 수송을 목적으로 개발 중이다. 위그선은 장점이 많다. 속도는 시속 200~500㎞로 비행기의 절반밖에 안 되지만 기존 선박보다 10배까지 빠르다. 연료비는 항공기의 절반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공항이 필요 없어 활주로를 닦을 필요도 없다. 이 때문에 일본·중국 항로 등 근거리 해상운송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수년 내에 서울 잠실이나 여의도 등 도심 근처 선착장에서 타고 2시간 만에 제주도 선착장에 내려주는 제주도 해수욕 당일 관광코스가 개발될지도 모른다. 닿을락 말락 하는 수면 위를 빠르게 비행하는 기분은 스타워즈의 주인공 같은 전혀 새로운 느낌을 줄 것이다.

 사실 이도 저도 아닌 것들은, 예를 들어 우화 속의 박쥐처럼 긴 ‘왕따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다 요즘은 이런 어중간한 것들이 혁신을 이끌고, 나름의 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 위그선도 그렇고, 얼마 전 유행했던 ‘같기도’라는 이도 저도 아닌 유머가 사람들을 크게 웃겼던 것도 그렇다. 물론 여기에는 적당히 섞어 놓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장점을 잘 살려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공학과 경영학을 섞어 놓은 새로운 영역을 공부한 나를 가끔씩 공학자로 봐야 하는지 경영학자로 봐야 하는지 헷갈려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이 위그선에 대해 설명한다. 기존의 담을 허물고 융합하는 데서 이젠 혁신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위그선 이야기를 이것 저것 다 조금씩은 하는 자녀의 진로 지도로 고민이 많은 부모님들에게도 해주고 싶다. 아직은 교육이 이런 융합의 세상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기존 교육제도에 맞지 않는다고 아이를 탓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장점을 잘 찾아 융합하는 지도를 해주 면 이 아이가 가까운 미래에 세상의 혁신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양종서 기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