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관 「음식논쟁」(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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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나라가 하도 태평성대라 그런지 요즘 정치인들은 정말 할일이 없는가 보다. 지금 정치인들이 한창 논쟁을 벌이는 것은 어마어마하게도 「음식」문제다.
비행기 추락의 대참사가 있던 날 자녁 민자당 간부들이 회식을 했는데 민주당측은 그런 큰 일이 났는데 어떻게 술자리를 가질 수 있느냐고 공격하고 민자당은 자녁도 못먹느냐고 응수하고 있다. 예정된 모임이더라도 그런 일이 있으면 대책회의로 돌려야 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고,심지어 상주라도 밥은 먹는다,민주당 최고위원들은 그날 저녁을 굶었느냐는게 민자당의 반격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런 거룩한(?) 논쟁을 벌이면서 양쪽은 막말까지 예사로하고 있는 것이다. 민자당은 민주당을 당도 아닌 오합지졸이라고 하고 민주당은 상대방의 지난 실언을 역용해 인두로 지질 수도,한방에 날릴 수도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보궐선거가 예정된 대구동을에서는 「음식법률논쟁」이 벌어졌다. 민자당 지구당은 당원행사에 프랑스식 전채요리인 오르 되브르를 내놓았는데 이것이 식사냐,다과냐로 시비가 제기된 것. 식사면 선거법위반이고,다과면 위반이 아닌데,오르 되브르란 빵조각이나 과자위에 햄·치즈 따위를 올려놓은 것으로 리셉션 등에서 흔히 나오는 것이다. 여야는 이 문제를 결국 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맡겼다고 한다.
음식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이런 논쟁이 하도 차원이 높아서인지 누가 옳은지 분명치도 않지만,누가 옳고 그르고는 오히려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복잡하고 중요 국사가 태산같은 이 시절에 어쩌면 그런 고급스런(?) 테마를 골라내어 시비를 벌이는지 그 「뛰어난」 안목과 감각에 탄복할 뿐이다.
보선택일을 놓고 좁쌀시비를 벌인데 이어 다시 이런 「음식」시비를 하고 있으니 정치인들의 머릿속에 과연 뭣이 들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계속되는 불황에 비행기 참사까지 터져 온 사회가 울적한 판에 정치인들은 나라를 올바르게 끌고 가지는 못할망정 국민을 더이상 피곤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따위 저질·저급·유치한 논쟁은 가뜩이나 신뢰가 폭락한 정치인들의 자기비하·자기왜소화만 가져올 뿐이다.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이 다시 나올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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