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영화 침투 이대로 둘 수 없다|불 대미 『문화 전쟁』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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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과 프랑스간에 「문화전쟁」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4월 집권한 에두아르발라뒤르 프랑스우파정부는 프랑스문화의 미국화에 불쾌감을 나타내고 미 제국주의 문화에 대한 전쟁을 선포, 예술 특히 국내영화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을 확대할 뜻을 비췄다.
앞서 지난 81년에 취임했던 자크 랑 문화장관도 취임 초에 프랑스문화 부흥이라는 기치를 들고 나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과 영합, 오히려 미국화를 심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회주의 정부하에서 프랑스영화는 세계무대에서 미국과의 경쟁에서 자꾸만 뒤떨어졌다 .지금은 흥행 면에서는 아예 미국 영화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프랑스의 전체영화관객 수입의 55%가 미국영화에서 벌어들인 것인데 반해 미국 내 프랑스영화수입은 전체 관람수입은 수입의 0·6%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내 프랑스영화 관람수입은 최근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공원』이 미국에서 개봉 첫 주만에 벌어들인 수입 2천5백만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문화침투에 대한 프랑스영화인들의 불만이 가장 원색적으로 확인된 것은 금년 초 열린 칸영화제에서였다.
국민적 존경을 받는 프랑스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는 영화제 공식석상에서 『상업성에 치우친 미국영화의 침투로 그래도 황폐화수준까지 악화되지 않은 국가는 유럽에서 프랑스뿐』이라고 강조했다.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화를 발명한 사람은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이 아니고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프랑스 영화 감독들간의 공방도 뜨겁다. 프랑스 감독들은 미국 영화들이 단편적인 스릴과 개그를 짜깁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하고, 미국영화감독들은 프랑스감독들이 따분한 영화만 만든다고 비난하고 있다.
프랑스가 이미 작품화한 것을 소재로 다시 영화화하는 미 영화계의 최근 풍조도 프랑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이 세계영화계의 중론이다. 프랑스로서는 미 영화계의 이런 태도가 그 작품에서 프랑스적인 냄새를 배제하기 위한 속셈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문화적 갈등에서 끝나지 않고 경제전쟁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프랑스정부는 최근 유럽공동체(EC)와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문화적 독특성이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까지 발표했다. 이는 프랑스와 유럽영화의 보호문제가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테이블에까지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영국등 다른 유림국가 감독들까지 프랑스를 지원사격하고 나섰다. 영국의 데이빗 퍼트남 감독을 비롯한 유럽국가 감독들이 오는 9월 최초의 공동스튜디오를 마련, 영화진흥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파리에 설립될 이 스튜디오는 유럽공동체(EC)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게 된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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