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으로 끝난 민주 「보선거부」/최훈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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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12 보선일자를 둘러싼 여야간의 지루한 공방은 민주당이 26일 보선보이콧 카드를 철회함으로써 또 한차례의 관례적인 푸닥거리로 끝을 맺고 말았다.
이번 보선날짜 논쟁의 요체는 『무덥고 짜증나는 한더위에 선거를 치르자는 것이 투표율저하 음모이므로 5일간 연기해야 한다』는 민주당측의 문제제기에서 비롯됐다. 물론 정부여당은 『선거일 결정은 정부의 고유권한』이라며 단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5일차」를 둘러싼 이같은 여야간 소모전이 문민시대에 들어서도 쉼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을 여간 짜증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7월 임시국회때만 해도 『개혁입법이 시급하다』며 20일간 회기를 주장하는 민주당과 『4월 임시국회가 끝난지 얼마되지 않았다』며 이틀회기로 클린턴 미 대통령 연설만 듣자는 민주당측이 맞서 티격태격으로 하루하루를 소일하고 말았다.
뿐만아니라 신정부 들어서도 보궐선거 일자와 국회 개회일·회기는 물론 국회회기중 본회의·상임위 일정 등은 사사건건 여야간의 단골시비 거리로 등장했다. 그것이 정치의 전부인양 착각하는 듯한 여야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개혁운운하는 그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했다.
여야가 이같은 절차적 문제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사이 모든 피해가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음은 말할것도 없다.
이번 보이콧 공방을 통해서도 『혹서선거의 부당성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박지원 민주 대변인)는 야당의 선거전략적 의도나 양당의 합의관행을 슬그머니 생략해버린 여당의 처사 모두가 국민들을 짜증스럽게 했다.
그래서 보선 보이콧 공방을 보는 시각중엔 『욕하면서 배운다고 여야 정치인들이 과거 권위주의시절 서로 시비를 걸고 흠집을 내야 직성이 플리는 새디스트성향에 길들여진 것 아니냐』는 극단적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인들만 국민이 어떤 정치를 원하는가를 모르고 있다는 비아냥이 시중에 쫙 나돌고 있는데도 여야가 「곁가지 정치」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정말 짜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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