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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손쉬운 열쇠 「중재」/「상사분쟁과 소송외적 해결」(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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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송과 법효력 동일… 쌍방만족 유도/빠르고 비용 저렴… 국제성까지 갖춰
최근 몇년간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통계를 보면 소송사건과 비송사건을 합해 매년 1천만건을 상회한다. 국민 4인중 1인은 사건과 관련이 있는 셈이다.
○연 6백만명 “분쟁”
이 가운데 대립된 이해관계자가 있는 소송사건이 3백여만건이다. 이해관계가 정반대인 다툼의 상대방까지 합하면 송사로 고통받는 국민은 최소한 이보다 2배가 된다. 분쟁에 휘말려 있는 국민이 이처럼 많은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그들의 가족과 이해관계인을 포함시켜 생각해보면 분쟁으로 인한 국민적 에너지 손실 및 금전적·시간적 낭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무역·합작투자·해외건설 또는 해운 등 국제거래에서 야기된 분쟁은 계상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도 포함시켜야 한다.
우리 한국인의 천성은 다툼이나 싸움을 싫어하는 선량한 국민이다. 어지간하면 「손해본셈」 잡고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참다못해 선택하는 최후수단이 소송이다. 따라서 표출되지 않은 크고작은 분쟁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분쟁과 그로인한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
인간사회에 싸움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최대한 예방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또한 억울함을 손쉽게 호소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고 되도록 빠르고 공정하게 해결하는 방안은 없을까.
이런 취지에서 부합하는 제도가 중재절차다. 중재는 소송과 함께 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해 준다. 양자의 법적효력은 동일하다. 중재법에서 「중재판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설사 중재판정에 불만이 있어도 법원에 불복항소할 수 없다. 확정판결력이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3심제인데 비해 상사중재원은 단심제로 운영되는 것이다. 그러나 쟁점에 대한 충분한 대화와 절충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실제로 판정에 불만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
○판정불만 드물어
세계적으로 특히 미국 등 선진국에서 소송외적 분쟁해결 방법에 대한 관심이 최근 폭발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것도 단심제에 따른 신속성·경제성이 높이 평가받기 때문이다.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면서 동시에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가진 중재인에 의한 판정이 쌍방 모두 만족시켜주는 형평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중재는 현대인의 시대감각과도 일치한다.
경제가 점차 발전해 국민소득도 늘고 생활수준도 윤택해지는데 이와는 달리 사건은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이미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은 수용한계를 능가하였다.
실례를 드리면 91년도에 접수된 민사 본안사건 42만건중 기간내 처리율은 80% 수준이다.
민사 본안사건은 금전채권·부동산에 관한 소송이 95%다. 바로 이 사건들은 중재로 해결이 가능하다. 신속한 해결을 원한다면 소송보다 중재를 생각해볼만하다.
중재가 갖는 아주 중요한 또 다른 강점은 국제성이 있다는 것이다. 판정의 효력은 국경을 초월해 외국에서도 그 효력과 강제집행이 보장된다.
○30%가 국제사건
국제화시대를 살면서 세계시장을 활동무대로 하는 무역인들의 부당한 해외손실을 구제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같은 판정효력의 국제성은 「뉴욕협약」에 근거하고 있다. 체약국 상호간에는 일국의 중재판정은 분쟁 당사국의 국내법에 근거해 내려진 것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된다.
체약국은 모두 89개 국이다. 한국의 교역파트너를 총망라하고 있다. 대한상사중재원은 접수된 중재사건의 3분의 1이 국제 사건이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문제로 경색국면에 있는 남북경제협력도 그로부터 발생되는 분쟁은 중재만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통일전 동서독이 원활히 교역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발전된 중재제도가 큰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중재제도가 국내외거래에 있어 상거래질서와 기대이익의 보장에 탁월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은 세계적으로 공인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있어 중재제도의 활용도는 극히 저조하다. 역사가 일천한데도 원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중재법이 비밀보호 차원에서 중재판정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중재기관의 존재나 중재절차의 장점이 널리 인식되지 못한데 있다.
중재 심문과정에서 노출된 중재당사자들의 영업상 또는 개인적인 비밀도 엄격히 보호되어 있다.
그 결과 상사중재원을 알고있는 극히 제한된 기업인과 개인만이 이용하는데 그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중재판정 실적을 보면 국내사건 8백억원,국제사건 6백만달러의 대규모 사건도 있다.
○사법자치에 입각
중재는 「자기가 처분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한 분쟁을 대상으로 하는 사법자치 정신에 입각하고 있다. 당사자 쌍방의 합의아래 선임된 중재인의 판정에 복종하겠다는 약속이 중재의 전제조건이다. 이것을 중재계약이라 한다.
거래계약서나 증거력 있는 서면에 분쟁해결기관·적용법규·판정결과 복종의사 등을 명기하는 것이다. 가령 거래당사자가 한국에서 분쟁해결을 희망한다면 중재계약은 『이 계약과 관련해 생기는 분쟁은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상사중재 규칙에 의거해 중재로써 해결한다』는 표현이 있으면 된다.
김영삼 문민정부는 이른바 한국병 치유에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분쟁의 세계에서 보면 부당한 손해에 대한 해결노력의 포기도 일종의 한국병이다.
상사중재원에 접수된 사건중에는 외국인이 신청한 수십달러짜리 클레임도 있다. 따질 것은 따지자. 중재계약이 있으며 법적 구속력이 완벽하지만 설사 이것이 없다 할지라도 상사중재원에 해결의뢰를 하면 축적된 경험과 지혜를 동원해 실질적 도움을 줄 수도 있다.<대한상사중재원 사무총장 이순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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