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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경아」는「테스」같은 영원한 연인"|『별들의 고향』최인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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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그래, 경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여자인지도 몰라. 방이 되면 서울거리에 밝혀지는 형광등의 불빛과 네온의 번뜩임, 땅콩 장수의 가스등처럼 한때 피었다 스러지는 서울의 밤. 조그만 요정인지도 모르지.』
수출에 열을 올리며 본격 산업시대의 꿈을 달구던 70년대. 중동건설·월남 전쟁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강남도 개발하고 소비의 맛에도 차츰 눈뜨던 70년대 초반 우리 독서 계는 신출내기 작가 최인호씨가 낳은「조그만 요정 경아」에게 밑도 끝도 없이 빨려 들었다.
72년 27세라는 최연소 나이로 조선일보 연재에 들어간『별들의 고향』은 한 여자와 그녀를 가졌던 네 남자의 이야기다. 대학에 들어갔다 가난에 도중하차하고 무역회사에 입사하는, 72년대 흔히 볼 수 있었던 평범한 여자로 경아는 출발한다. 타고난 밝은 성격으로 경아는 같은 회사 사원, 상처한 남자, 사진예술 한답 시는 탕아, 대학강사 화가 등 이 세상 평범한 남자들에게 차례로 마음과 몸을 주고 스스로 스러져 간다. 뭇 남자들에게 편력 당하고도 아무런 원망 없이 흰눈 위로 스러져 찬 강물 위 한줌 재 되어 흘러갔다는 이야기가『별들의 고향』이다.
이 흔해빠진 이야기를 젊은 작가 최씨의「반세대적 감성과 미학」이 70년대 최대 화제작으로 만들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온통 깨어져 입안으로 빨려 오던 신선한 키스」등 전세대 작가들에게서는 찾기 힘든 비늘 번득이는 감각적 표현들이 독자 눈에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다. 감각적 표현의 즐거움에 더해 평범한 남녀에 대한 얄미우리만큼 정확한 일상과 심리묘사는 독자들을 곧장 소설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건 나, 그건 바로 너」식으로 독자들을 작중 인물과 동일시하게 하며 최씨는 섹스를 덧씌운 요정 경아에게 70년대를 온통 흘리게 했다.
-신문 사상 최연소로 연재에 들어갔다. 당시의 심정과 각오는.
『원로나 중진 작가들이 쭉 연재를 맡아 오고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들면서 그들은 독자의 관심을 끄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 혹시 젊은 내게도 연재기회가 오지나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는데 실제 그 기회가 왔다. 나는 내가 버린 여자를 써 보기로 했다. 테스 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독자 가슴속에 남을 여자를 낳고 싶었다. 우리 시대에 사는 영원한 연인을 그리되 전 세대와는 다른 감성으로 철저하게 재미있게 써 보려 했다.』
-대중을 끌어들이는 흥미로 해서「별들의 고향」은 1백만 부 이상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 대중적 성공에 힘입어 74년 소위「청년문화 선언」을 한 것으로 안다.
『원래 거창한 무슨「선언」은 아니었다. 생맥주가 막걸리·소주를 몰아내고 통기타 노래가 유행하고「별들의 고향」이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시점에서「청년문화」란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한 칼럼을 통해 이전시대와는 분명 다른 이런 문화현상의 특성을 지적했었는데 이에 대한 반박을 고려대 임희섭 교수가 발표했다. 그 글에 대한 나의 반박이 신문사에서「청년문화 선언」이란 제목이 붙어 나갔다.
내가 내세웠던 청년문화란 문화를 엘리트주의적 허위의 굴레에서 구해 내 대중에 확산시키자는 것이었다. 혼자서는 송창식의 통기타 노래를 즐기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깎아 내려야만 하는 문하에 대한 허위의식, 그 비겁함을 버리고 고급 문화와 대중문화의 접목 점을 찾아 자연스레 대중의 문화의식·예술적 심미안도 끌어올리자는 것이었다.』
-그 같은 주장에 대해 문화의 하향평준화, 비판의식 없는 현실 탐닉이란 반박도 들끓었다. 대중화 허울아래 문화를 감각 화·오락 화·상업화했다는 지적이다. 물론 삶과 사랑에 대한 모럴 없이 성 개방 풍속에 호응, 나아가 미화까지 했다는『별들의 고향』에 대한 일부의 지적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당시 문학은 아무리 화제가 되더라도 문단이라는 폐쇄회로에 갇혀 있었다. 문단 안에서만 이러쿵저러쿵 일뿐 그 작품이 대중을 파고들지는 못했었다. 문학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그 자체의「살롱」에 갇힌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별들의 고향」은 독서 층, 아니 책을 안 읽던 대중에까지 파고들었다. 이같이 나는「예술가들만의 살롱」의 문을 대중에 열어 젖혀 그들이 쉽게 들어와 그들의 심미안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었다. 이러한 의도에 성공했던「별들의 고향」이 지금도 내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간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가 더해 가고 또 그만큼 진보적 문학의 열기가 고조돼 가던 당시 솔직히 「별들의 고향」에 대한 죄책감도 들었었다. 이 작품이 건전한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고 문학을 상품화해 문학에 누를 끼치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 말이다.』
-일본 인기작가 무라카미하루키의 감각적 사 소설 류에 감염됐다는「혐의」를 받고, 표절논란까지 불렀던 요즘의 일부「신세대작가」들이 그게 아니라며 그 반론으로 선생의 작품 등 70년대 감성적 작품을 들먹였었다. 감각적 표현, 에세이 적 회상에 의한 현재와 과거의 자유로운 넘나 듬의 구성, 시나 가요 등의 삽입이나 그것들에 의해 추 동된 상상력 등 언뜻 보기에 유사점도 많은데「70년대 신세대」로서 요즘 신세대작가들과의 차이는.
『나도 그런 말을 들었다. 그러나 분명히, 정확히 말해 요즘 일부 신세대작가들은 곤란하다. 그들은 유명해지는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고 너무 성급하게 그 방법을 써먹으려 한다.
70년대 작가들은 기초가 튼튼했다. 자신의 키를 넘는 습작원고를 바탕 삼아 선배들과는 또 다른「반세 대」를 표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일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광고 문구 같다. 꿰 맞출 방법도, 삶의 깊이도 없이 소설의 이름으로 편편이 나부끼는 기발한 문구들…. 그들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씁쓸하다.』
-청년문화 범주에 속하는 작품에서 80년대 후반 역사소설로, 다시 90년대 들어서 종교소설로 넘어왔다. 문학관은 무엇인가.
『소설도 50여권 펴내 책도 많이 팔았고, 영화도 만들어 손님 많이 들었고, 문학상도 많이 탔고, 신문에 대서특필도 많이 됐다. 그러나 계속 아니다, 아니다며 무엇이 진정한 작가의 길인가에 쭉 시달려 왔다.
요즘 나는「심청과 심 봉사」라는 화 두를 붙들고 있다. 심 봉사 눈을 뜨게 한 것은 공양미 삼백석이 아니라 딸을 보고픈 일념이다. 심청이란, 문학이란 진리는 항상 옆에 있었지만 그것을 못 본 나는 작가로서 장님이었다. 그러나 한 3년 집안 문 걸어 잠그고 산문에 든 것 같이 지내니 비로소 심청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문학의 눈이 뜨이는 것 같다.』
『문학의 최대자산은 고독』이라며 최씨는 집 문을 걸어 잠그고 가급적 외부와 두절되려 한다. 한때 박정희 다음으로 매스컴에 자주 올랐던 자신의 존재조차 망각시키려는 최씨는 대중 속으로 를 외치던『별들의 고향』의 세계로부터 이승·저승 거리만큼이나 멀어져 있다. 그러나 최씨는『작가는 결국 작품목록으로 남는다』며 자신의 작품『별들의 고향』은 부정하지 않는다.
생긴 모든 것 다 제때 제 삶이 있듯『별들의 고향』또한 한 시대를 살며 그 시대를 촉촉이 적셨기 때문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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