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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對美라인 조사 파문 확산…청와대 '군기잡기' 나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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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와대가 외교부 대미외교 라인 직원들을 상대로 벌인 조사의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12일에는 청와대가 조사 과정에서 기자나 공직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하지 않았느냐는 논란도 불거졌다. 야당에선 "이 정부가 제2의 신군부냐"는 비판을 퍼붓고 나섰다. 도대체 외교 업무를 맡은 공무원들이 왜 공직 기강과 사정을 담당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타깃이 된 것일까.

◇문제 발언 뭐기에=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도마에 올린 사안은 크게 두가지다. 우선 청와대는 지난 9일 '묵과할 수 없는 부적절한 언사'(윤태영 청와대 대변인)를 이유로 외교부 모 과장을 불러들였다. 그가 공.사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해 한 발언에 대해 외교부 내부 인사의 제보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회식자리나 사무실 등에서 "총선 때 한나라당이 이기면 盧대통령의 영향력이 없어질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게 청와대 측의 얘기다. 청와대는 그가 "김정일에 호감을 갖는 이들이 盧대통령의 지지 세력"이란 홍사덕 한나라당 총무의 주장에 호응하는 반응을 보였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외교부 일각에서는 그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젊은 386보좌진은 탈레반 수준이며 盧대통령이 이들에 휘둘리고 있다"고 말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정수석실은 또 모 신문의 '외교부-NSC 사사건건 충돌' 기사와 관련, 공직자들이 혼선을 자초할 만한 의견을 발설했는지 따지기 위해 외교부 고위 당국자 두명을 조사했다. 그러나 문제를 발견하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조사를 벌인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미리 이들과 기자 사이의 통화 사실을 알고 내용을 물었다는 해당 기자의 주장이 제기됐다.

그래서 청와대가 기자나 해당 공직자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조회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청와대 측은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청와대는 일부 외교 현안과 관련한 기밀을 언론에 유출했는지도 조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번 조사를 두고 청와대가 공직자들의 군기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경찰청 특수수사과 소속 여경이 盧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에 관한 루머를 사석에서 얘기했다는 이유로 인사조치 당한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니냐는 것이다.

◇잡음 이어져온 NSC와 외교.국방부 대미라인=현 정부 출범 이후 외교.국방부 대미 라인 일부 직원들이 줄곧 NSC의 구성.권한에 불만을 표시하며 갈등상을 노출해온 점도 이번 조사의 한 배경으로 거론된다. 외교.국방부 측의 일부 관료들은 "한.미동맹보다는 자주외교를 중시하는 젊은 아마추어 인사들로 NSC가 채워져 있다" "모든 결론은 다 NSC에서 정해져 있다"고 물밑 비판을 해왔다.

◇무리한 조치 논란=한나라당 박진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대대적 색출조사를 벌이는 것은 공무원들의 입을 아예 막아버리겠다는 속셈"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장전형 부대변인은 "기자들의 통화 내역을 조사했다면 유신시대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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