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래 가는 6·29」의 교훈/이상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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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년의 「6·29」는 제대로 된 생일밥상을 받지 못했다. 탄생 6주년을 맞은 이날 6·29를 기념하는 어떤 공식적인 행사도 없었다.
불과 1년전만해도 요란하게 벌어진 잔치석상에서 온갖 찬사를 받았던 6·29였지만 이제는 무상을 곱씹어야 하는 조락의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때문에 29일 저녁 사사로이 기념밥상을 차릴 예정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춘구의원(6·29 당시 민정당 사무총장) 등은 이날따라 더 더욱 쓸쓸함을 느낄지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은 6·29선언을 「고독한 결단」의 산물로 「명예혁명이자 우리의 민주장전」이라고 스스로 치켜세워왔다. 따라서 그는 아마 6년전 서울의 한 다방이 「오늘은 기쁜날」이라며 손님에게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던 그 환희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대로 6·29가 우리의 민주화에 한 이정표를 남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금 그 의미가 크게 퇴색한 것도 사실이다.
요컨대 6·10항쟁이 부각되면서 6·29의 피동적 측면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이제 「6·29는 권력이 국민의 힘에 밀려 어쩔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구책」이라는 새로운 평가가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됐다. 6·29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지난해 5,6공세력이 벌였던 이른바 「소유권 분쟁」이다. 5공세력은 이때 『6·29의 구상 및 연출은 모두 전두환대통령 작품』이라고 했고 6공측은 『노 대통령의 고독한 결단』임을 줄기차게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의 공다툼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열을 올리며 가로채려했던 6·29가 오늘 푸대접을 받을대로 받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이 점이야 말로 권력자에게는 중요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즉 「6·29 공가로채기」의 허망함은 권력자가 아무리 나름대로 역사를 평가하고 규정하려해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권력자의 능력밖이란 사실을 웅변해 준다. 이는 또 권력자는 역사앞에 겸허해야 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우리는 김영삼대통령이 과거사에 대해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는 것을 보았다. 새 정부에 대한 자신에 찬 자평도 듣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역사적 평가는 사가의 몫이다. 공치사를 좋아하는 권력자의 우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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