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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전대통령「막판」번복-"황영시 육참총장 「1년 유임」안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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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전두환 대통령의 군 시절 꿈은 육군참모총장이 되는 것이었다.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은 얘기하고 있다. 그가 11기 정규4년제 육사졸업생 중 첫 번째로 「별 중의 별」이 되기 위해 전력투구해온 것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5·16후 대위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고향(합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라고 권유했을 때도 『군에 충성을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거절했다. 적어도 그의 생애에서 대통령을 꿈꾼 것보다는 참모총장을 향해 줄달음친 기간이 더 길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점이 평생 대통령이 되겠다고 꿈을 가꿔온 김영삼 대통령과 다른 점이다.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된 12·12를 군내인사불만의 표출이라는 다른 시각에서 보는 사람들은 전 장군이 참모총장만 확실히 보장됐으면 5·17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전씨 꿈은 「총장」>
10·26이전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이따금 군인사법을 펼쳐들고 『정규육사출신은 환갑이 가까워져야 겨우 총장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불만겸 개탄을 자주 표시했다고 한다. 당시 육사5기의 정승화 총장 다음으로 7기(이건영3군사령관 선두)·8기(이희성 육참차장 또는 이재전경호실차장)·9기·10기(황영시·신현수 군단장 중 한명)가 줄줄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차례로 총장을 하고 11기까지 오려면 최소 8년이 걸려야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장군계급정년이 준장 8년, 소장 7년, 중장 6년이었다. 막말로 일단 장군만 되면 중장까지 21년을 지낼수 있도록 돼있었다. 그로 인한 인사정체에 특히 불만이 많은 계층은 전사령관을 필두로 한 정규육사 출신들이었다. 5·17후 신 군부가 군인사법부터 최우선적으로 손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신군부의 핵심출신 Z씨의 증언.
『80년 서울의 봄을 구가하던 3김씨 중 누구하나가 전 사령관한테 바싹 붙어 12·12의 책임을 묻지 않을테니 걱정 말라, 참모총장을 꼭 시켜 준다고 보장했더라면 신 군부는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밀었을지 모릅니다. 12·12는 처음부터 정권장악 시나리오를 써놓고 일으킨 것은 아닙니다. 80년초까지 군부의 간판인 육참총장은 전 사령관의 가슴을 뛰게 하는 매력적인 자리였을 것입니다.』
전대통령은 「장군」, 그리고 「육군참모총장」이란 단어에 유달리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정권을 잡은 뒤에도 전 대통령은 후배군인들의 인사에는 무척 세심했다. 두 허씨 등 보안사참모들은 정치를 하라고 예편시켰지만 나머지 정규육사후배들 중 간판급은 군에 남겨두었다. 12기 박희도·박준병, 13기 최세창, 14기 이종구, 15기 고명승, 16기 장세동(그는 84년12월까지 현역으로 경호실장을 지냈다)·최평욱, 17기의 김진영 대령 등이 그들이다.
군부우위시대의 육군참모총장은 굉장한 자리다. 그런 만큼 대통령은 육참청장을 임명할 때 여러가지 요소들을 감안한다. 하고싶은 사람은 많지만 군을 잘 아는 대통령의 입장에선 결코 선택이 쉽지 않다.
황영시 대장에서 11기의 정호용 대장으로 육군참모총장 자리가 넘어가는 과정이 한 예가 될성싶다. 황 총장이 83년12월16일『34년간의 군생활을 국방의 대열에서 미력하나마 온갖 정열을 바쳐 헌신 봉사하다가 군문을 떠나게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전 역사를 읽은 것은 의외의 「사건」이었다.

<진의오판 시각도>
사흘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육본참모들은 황 총장이 유임되는 줄 알았고 그달 20일 열리는 연말 주요지휘관회의를 황 총장의 군 운영방침과 스타일에 맞춰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12월들어 황 총장은 청와대쪽이나 친한 군선·후배들을 만나면 『유급하게 됐다』며 자신의 임기연장을 넌지시 비췄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참모총장 추천권이 있는 윤성민 국방장관도 그가 유임될 것으로 듣고 있었다. 당시 참모총장의 임기는 2년이었으나 전시·사변 또는 국방상 필요한 때는 1년 이내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돼있다. 황 총장이 자신의 「유임」얘기를 꺼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전대통령과 의논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 황 총장의 임기연장시도 이야기는 육참총장의 중요성과 관련해 두고두고 회자될만 하다. 한마디로 황총장은 전대통령의 진의를 명확히 읽지 못하고 자가발전을 심하게 했고 전대통령은 고민 고민 끝에 황 총장을 탈락시켰던 것이다. 당시 군장성 Q씨의 회고.
『황 총장은 80년12월 개정된 군인사법에서 총장임기를 2년으로 하되 필요시 1년 연장할 수 있다는 대목이 의당 자신에게 적용될 것으로 믿고 있었지요. 전대통령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언질을 준 모양이에요. 전 대통령은 자신이 참모총장을 못 지키고 대통령이 된 후 1년에 두 단계씩 뛰어오르는 등 육사후배들의 진급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지요. 또 정규육사들이 너무 설쳐대 군내 기강이 무너진다는 얘기도 나왔지요. 예를 들어 육사15기인 청와대 조명제 국방담당비서관이 CPX기간 중 다른 비서관들을 데리고 놀러가듯 군 벙커에 갔다는 보고가 전대통령에게 전해졌지요. 전대통령은 노발대발해 앞으로 국방담당비서관은 육사출신은 쓰지 말라고 호통을 쳤지요. 그후 임명된 국방비서관이 통역장교출신의 박중응 장군과 ROTC출신의 박세환 비서관(현2군사령관)이었지요. 그런 점에서 황 총장을 1년 더 유임케 해 정규육사후배들의 기를 꺾어줄 생각을 했던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 대통령은 황 총장의 임기를 1년 연장했을 때 생길 파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다음 총장으로 찍어놓은 동기생 정호용3군사령관의 처리문제가 부닥쳤다. 2년 근무를 끝내가고 있어 1년 더 그 자리에 앉혀놓든지, 예편시키든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합참의장엔 동기생인 이기백 대장이 6개월전에 이미 임명돼 있어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인사에 영향 우려>
게다가 황 총장의 『유급하게 됐다』는 얘기는 정규 육사출신들의 반발을 샀다. 전 대통령도 자신의 임기 중 가급적 총장을 한 명이라도 더 지명할 수 있어야 군의 충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Q씨의 이어지는 회고.
『그때쯤 하나회의 16, 17기생들은 우리는 언제 총장을 할수 있는가 하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고 다녔지요. 총장의 1년 연임은 여러가지 인사 파급효과를 가져옵니다. 전대통령은 12·12때 군은 짊어져야 한다며 대대적인 숙군과 군부재편을 함으로써 정규육사 후배들의 지지를 받았는데 총장임기를 1년 연기해 준다는 것은 자신의 소신과도 맞지 않았지요. 그렇다고 육사 후배들의 반발이 집단적인 깃은 아니었습니다. 빨리 정규 육사시대를 열자는 무언의 압력 같은 것이었지요. 거기에다 황 총장은 전대통령의 선배여서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지요.』
또 다른 신 군부출신 Z씨의 회고. 『황 총장의 1년 임기 연장은 지나친 12·12 논공행상으로 비춰져 무리였지요. 전 대통령은 황 총장에게 한때 언질을 준 것이 미안하니까 그런 소문이 나도록 가만히 놓아두었다가 육사 후배들의 반발을 유도했을지도 모릅니다. 육군총장의 위상에 대해 전대통령은 나름대로 고민한 겁니다. 황 총장의 퇴진과 정호용씨의 총장시대가 열리자 12·12거사 참여자중 한사람은 「12·12의 완성」이라는 해석을 달기도 했지요.』 <26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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