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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당나라때의 문필가인 한유의 「도수화」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어떤 위험이라도 무릅쓰고 강행하는 모습을 일컫는데 예부터 물과 불이 전술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돼 왔음을 감안한다면 그 속담은 전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같다.
무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자연현상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쉽사리 좌우되었다. 그 자연현상을 대표할만한 것이 물과 불,그리고 기후다. 이것을 적당히 조화시켜 이용한다면 결코 패전하지 않는다는 병법이론도 전해내려오고 이다. 『삼국지』에도 나오는 조조와 재갈공명간의 적벽대전,고구려때 을지문덕장군의 살수대첩,13세기 고려와 원나라 연합군의 일본원정 같은 전사들이 자연현상을 최대한 이용한 승전의 기록들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 손무가 남긴 『손자병법』도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책속에 화공과 수공을 비교한 대목이 재미있다. 그는 적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것는 화공이며 수공은 오직 아군의 공세를 강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화공은 단번에 적의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애버림으로써 일찌감치 승전할 수 있으나,수공은 적의 후방연락과 지원 보급 등을 끊어 고립에 빠지게 하는데 유효하기 때문에 단기전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수공은 본래 성을 공략하는 전법의 하나로서 물길을 끊어 성안의 적에게 타격을 주거나 성밖의 큰 물을 끌어다가 성을 침수시켜 항복받는 전술을 뜻한다. 그것이 현대전에서는 별로 의미없는 전술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손무의 화공을 뜻하는 오늘날의 가공할만한 현대적 병기들이 수공의 고전적 전술을 무색하게 하고 있는 탓이다.
87년 2월에 착공된 「평화의 댐」이 과연 북한의 수공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느닷없이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이 만약 「금강산 댐」으로 한국에 대한 수공을 계획했다면 『손자병법』을 원용하는 경우 그네들이 장기전을 획책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당시의 권력자들이 전체 국민을 우롱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밝혀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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