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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후 사정의 칼 쥐며 "거듭나기"|개혁 파고속 감사원 제 기능 "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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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감사원이 달라졌다.
새 정부 출범이후 우리 사회의 여러 구석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국가기관으로선 군·안기부·감사원·검찰 등 이 개혁과 변화의 파도를 가장 먼저 탔다.
감사원의 체질변화는 조금성격이 다르다. 군·안기부·기무사·검찰·경찰 등 이 잘못을 저질렀던 팔다리를 교체하는 대수술을 겪었다면 감사원은 그동안 힘을 못쓰던 팔다리의 기능을 바로잡는「원상회복」이었다.
감사원은 헌법으로 보장된 독립 사정기관이다. 그러나 역대 정권 하에서는 이 신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고 또 보장받으려고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3공∼6공의 청와대는 감사원을 국가 사정체제의 한 부분, 그것도 가장 힘없는 부분으로 종속시켰다. 청와대 사정비서실이 사정의 아버지 역을 맡았고 검찰·경찰·감사원·국세청 등을 형제 급으로 두었다. 형제서열에서도 감사원은 검찰에 항상 밀렸다. 전두환 대통령의 5공 때는 사회정화위원회라는 이복 맏형이 동생들을 눌렀다. 말하자면 항렬만 가장 높았을 뿐 실질 대접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들은 사정을 국가지배의 주요하고 효율적인 도구로 사용했다. 그래서 사정도 통치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게 조종할 필요가 있었다. 감사원 같은 독립기관이 원칙대로 정권의 이곳저곳을 쑤셔 대변 통치의 기방이 흔들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은 그 부패성으로 인해 사정의 칼날 앞에 허약할 수밖에 없었다.

<5∼6공 땐 푸대접>
감사원의 기능부진은 감사원지휘부의 인적구성에도 원인이 있었다. 검사출신으로 국보위를 거친 정희택 원장(82·9∼84·4)이나 12·12핵심인물로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황영시 원장(84·4∼88·7)같은 사람들은 경력 상 권력과 독립적일 수 없었다.
감사원의 실세로 꼽혔던 사무총장도 마찬가지였다. 장수총장이었던 성용욱(육사15기·전안기부국장)·성환옥(육사18기·전 경호 실 차장)총장은 각각 전·노 전대통령의 충성스런 부하였다.
이처럼 철저한 비전문가들이 낙하산을 타고 수뇌부를 장악했기에 감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고 감사원의 사기는 땅에 뚝 떨어져 있었다.
이러 던 감사원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힘을 되찾은 것이다. 감사원은「정권분위기」와「지휘부」라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완전치 새로운 환경을 맞았다.
먼저 감사원은 청와대란 울타리에서 거의 벗어났다. 김영삼 대통령은 감사원의 기능회복을 약속했고 이회창 감사원장은 독립을 천명했다. 지금까지 이 약속과 선언이 훼손 당한 흔적은 별로 없다.
한쪽에서는 감사원이 아직도 청와대의 입김에 눌려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비판론자들은 이 원장이 1주일에 한번 꼴로 김 대통령을 만나는 사실을 거론한다. 또『성역 없는 감사를 한다더니 대통령의 뜻에 막혀 율곡 감사에서 전직 대통령은 건드리지 못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도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청와대 주례 독 대를 보고 지시라는 단순구도로 볼 수는 없다. 이 원장은 개혁과 사정에 있어 김 대통령의 중요한 상담역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사람은 개별적인 감사사안보다는 굵직굵직한 개혁노선을 얘기하는 것 같다. 이원장의 한 측근은 이를『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짐짓 표현했다.
감사원이 통치권자의 올바른 방향의 국가운영구상을 존중하고 이를 업무에 반영한다고 해서 감사원의 독립성이 상처받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감사원은 행정부에 대해선 독립관계이지만 엄연한 국가기관인 만큼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전직대통령의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게 감사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재 곁으로 드러난 노선은 분명 다르다. 김 대통령은 정치보복금지 차원에서「비리가 드러난다 하더라도」전직 대통령을 문책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이 원장은 대외적으로「비리가 있다면」문책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인 입장 차이일 뿐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선 감사원이 통치권자의 결심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휘부 면모 일신>
감사원은「독립」을 지켜 내려고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 지난 5월초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실에서「사정의 조율」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이 원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원장의 취임이후 청와대가 주재하는 사정협의회에 감사원이 들어가 지시를 받는 모습은 사라졌다.
달라진 지휘부도 감사원의 원상회복을 뒷받침하고 있다.
감사원은 30년만에 자기 식구를 사무총장(황영하)으로 맞아 사기가 올라 있다.
새 정부 들어 기능이 회복된 감사원은 지난 1백10여일 동안 크게 봐서 세 가지 방향으로 감사업무를 수행해 왔다.
첫째, 그동안 성역으로 분류되던 곳에 칼날을 들이댄 것이다.
감사원은 가장 먼저 시범적으로 72년 유신이래 감사를 받지 않은 청와대 비서실·경호실에 감사반을 투입했다. 수의계약·예산낭비 등 여러 건이 적발됐다. 감사원은 다른 기관에 하라, 청와대도 감사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성역타파감사」의 대표적인 사례는 뭐니뭐니 해도 율곡 특감이다. 율곡사업은 역대 군부 정권 하에서 사정의 사각지대였다.
4월27일 시작된 대규모 특감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감사원은 감사역사상 최초로 전직 군 거물들을 포함해 21명이나 출국금지 시켰다. 감사원은 무기도입을 둘러싼 검은 거래를 파헤치느라 눈을 부릅뜨고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 성역 없는 감사와 관련해 안기부 감사문제가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감사원은 안기부를 감사할 계획은 없다고 했고 야당 등 비판그룹은 『안기부도 감사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비리 많은 곳 초점>
안기부감사 여부를 독립성문제에 연결시키는건 무리인 것 같다. 감사원법으로는 감사원이 안기부를 감사할 수 있다. 그러나 예산회계특례법·안기부법 등으로 안기부는「비밀보호」를 보장받고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기술적으로 감사다운 감사가 불가능한 것이다.
둘째, 비리 다발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감사다. 감사원은 이 부문에 가장 많은 감사인력을 쏟아 부었다. 몇몇 세무서·경찰서·구청 등 이「시범케이스」로 뽑혀 혼쭐나고 있다.
국책 은행의 꺾기 관행도 적발됐고 속임수 대학정원 증원·특례입학도 철퇴를 맞았다.
감사원은 하반기에도 이런 민생사정에 힘을 쏟을 방침이다.
셋째, 기동 감찰 국인 5국이 담당하는 공직자비리 추적이다. 5국은 암행감찰을 통해 몇몇 대어를 낚았다. 장기오 전 은행감독원 부원장 등 금융계인사3명과 박영대 전 상공부국장·허만일 전 문화부차관등 고위공무원이 그물에 걸렸다. 5국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판공비를 상납 받은 내무부의 오랜 관행도 비리의 하나로 집어냈다. 지금 암행감찰 반 요원들은 율곡 특감에 가세해 이종구 전 국방장관·김종휘 전 청와대외교안보수석 등 비리혐의자의 뒤를 캐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의 수사는 다르다. 검찰수사는 비위혐의만을 겨냥하는 부분사정이지만 감사는 항상 공직사회의 뒷머리를 응시하는 감시의 눈초리다. 그래서 감사원의 존재는 더욱 중요하다.
오랜만에 되찾은 기능을 감사원이 얼마나 잘 키워 갈지 지켜보는 국민의 눈도 매섭다.<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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