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지원책은, 재경부 "산업은행 통해 북한 개발자금 조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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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산업은행의 역할이 다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정부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대규모 북한 개발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재정경제부 임영록 차관은 8일 "산업은행과 (산업은행의 자회사인) 대우증권을 통해 국내외에서 (대북 협력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산업은행도 팔을 걷어붙일 움직임이다. 사모펀드(PEF) 투자와 채권 발행, 대출 등 가능한 방식을 모두 동원해 자금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이 앞장서서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중국.러시아에서도 주도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거센 민영화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난달 '국책은행 개편안'을 통해 산업은행의 골격을 현 상태로 유지한 배경에는 대북 사업과 관련된 중요한 역할을 맡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전했다. 부족한 남북협력기금을 대신할 민간 자금 조달과 북한 개발 금융 수요를 산업은행이 주도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한 포석이란 것이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조직은 산업은행의 산은경제연구소 동북아센터 산하 북한연구팀이다. 이 팀은 국내에서 북한 경제와 관련한 가장 많은 자료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4년 북한중국팀으로 출발, 올 초 동북아연구센터 북한연구팀으로 분리됐다. 현재 이 연구팀은 앞으로 들어갈 북한 개발금융 자금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정밀 분석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탈북자 출신 연구원을 포함해 모두 6명의 연구원이 통일 비용과 개발에 필요한 소요자금 등 각종 민감한 수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개성공단과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등 앞으로 남북경협에 드는 자금을 650억2000만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4월 북한 진출 기업의 업체당 대출 한도(50억원)를 폐지하며 자금 공급을 확대했다. 6월 현재 로만손을 비롯한 9개 업체에 99억5000만원을 대출(승인은 144억원)해 주고 있다. 지난해 국감에선 남북협력기금에서 대출이 거절된 업체들에까지 무담보 신용대출을 해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남북 경협에서 산은이 주목받는 것은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현재 수출입은행이 맡고 있는 남북협력기금은 비밀스러운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렵다. 우선 국회의 엄격한 예산심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남은 돈도 별로 없다. 1991년부터 올 6월 말까지 조성된 남북협력기금은 8조 978억원이지만 이미 7조 2421억원을 사용해 쓸 수 있는 돈이 8557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산은은 대북사업에서 악연이 깊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직전 정부가 산업은행을 통해 현대상선에 불법으로 4000억원을 대출해 주고, 이 가운데 2235억원을 달러로 바꿔 북한에 송금한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이런 비밀스러운 막후 거래는 2003년 특검을 통해 드러났으며 그해 9월 대북송금사건 1심 재판부는 "현대상선에 대한 산업은행의 불법대출은 정상회담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지 않지만 일정 부분 관련성이 있다"며 관련자 6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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