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부의 방정식’푼 전직 수학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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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남미의 록펠러’로 불리는 멕시코의 재벌 카를로스 슬림 엘루(67·사진) 회장이 세계 1위 갑부에 올랐다. 13년간 부동의 세계 최고 갑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밀쳐낸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6일 “슬림의 7월 현재 재산은 590억 달러(54조 4800억원)로 빌 게이츠 회장(580억 달러)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멕시코의 한 금융전문 사이트는 “세계 최고 갑부는 게이츠가 아니라 슬림 회장”이라고 보도했지만 당시 국제적 인정은 받지 못했다. 올 4월만 해도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슬림을 게이츠에 이어 2위에 올려놨기 때문이다.

3개월 만에 1,2위가 바뀐 것은 슬림이 소유한 기업의 주식 가치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포천에 따르면 슬림의 재산은 올 들어서만 120억 달러가 불어났다. 슬림이 보유한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멕시코 증시의 3분의 1, 국내총생산(GDP)의 5%나 차지한다.

슬림 회장은 자주 록펠러와 비교된다. 미국의 독점 재벌 록펠러는 전성기 때 재산이 미 GDP의 2.5%를 차지했다. 록펠러가 산업화 시기에 정유사업을 독점해 많은 돈을 모았던 것처럼 슬림도 독점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슬림 일가는 멕시코 유선전화의 92%, 무선통신 분야에선 73%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멕시코 사람이 쓰는 모든 돈은 슬림 일가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숫자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슬림 회장은 멕시코 국립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뒤 한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그후 주식중개인으로 일하면서 기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1982년 멕시코의 경제위기는 그에겐 기회였다. 외국 자본이 탈출하자 그는 싼값에 기업 사냥에 나서 훗날 막대한 부를 일굴 수 있었다.

슬림의 성공에 빼놓을 수 없는 게 그의 아버지 훌리안이다. 1902년 오토만 제국의 박해를 피해 레바논에서 멕시코로 이민온 훌리앙은 1910년 멕시코 혁명 당시 멕시코시티의 부동산을 사들이며 부를 모았다. 그는 아들 카를로스에게 철저한 경제교육을 시켰다. 물건을 살 때마다 장부에 기록하게 했다. 슬림 회장은 사무실에 아직도 이 장부를 갖고 있다.

슬림 회장 역시 세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경제 교육을 손수 시켰다. 1980년 10대인 아들들을 집 거실에 앉혀놓고 실제 사례 중심의 토론을 하는 식이다. 예컨대 ‘유럽의 사탕회사나 담배회사가 멕시코 담배회사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거나 ‘멕시코 보험회사가 비슷한 미국 보험사에 비해 싼값에 팔린다’는 주제들이다. 12살짜리 아들에게 담배회사를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묻는 식으로 비즈니스 감각을 키워준 것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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