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정치세력의 출현 기대/김영배(중앙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4일로 「김영삼 개혁」 1백일이 됐다.
그는 국민적 갈채 속에 묻혀있다. 국민 90% 이상의 지지율이라는 것은 거의 「절대적」지지다. 아마도 이러한 압도적 지지율은 그의 혁명적인 사정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구 시대의 부패가 줄줄이 고랑차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국민들은 쾌감과 흥분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곳곳 사정불안 도사려
장·차관,국회의원,고등검사장,군고위장성… 높은 인물들이 땅투기에 의한 치사한 축재방법 때문에,또는 슬롯머신의 검은 세력을 비호해준 대가로 정기적인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잡혀들어가거나 현직에서 물러났다. 의혹의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수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을지 모르나 사정대상이 된 고위인사들의 비중으로 보면 적어도 현 정부의 사정의 칼날은 엄하고 가차없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고질병인 부패의 고리가 한 가닥이나마 끊어지는 모습에 국민들이 환호하고 갈채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개혁가동 초기에는 냉소적 시각에서 김영삼정부를 바라보았던 이들도 이젠 김영삼정부가 「반부패적」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이제 개혁이라는 것은 일과성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도 믿게 된 것같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갈채의 그늘에 묻혀있긴 하지만 비판과 불만의 소리도 여전히 녹녹치가 않다.
『김영삼의 1인정치쇼다』 『제도화가 안된 인치다』 『정치보복의 표적사정이다』 『왜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잡아넣느냐,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들은 사정 자체에 대한 불평이다. 사정이 개혁의 전부가 아닌데 언제까지 돌발적인 목자르기식 사정을 할 것인가. 아무런 플랜도 없이 투서와 고발에 의한 즉흥적 사정으로 공직자들이 언제까지 불안에 떨어야 하느냐는 공직사회의 불만도 끈질기다.
개혁이라는 이름의 신권위주의며 문민독재라는 비판이 전혀 근거없지가 않다는 따가운 평가도 있다. 사정을 그만큼 했으면 됐으니 이제는 경제를 되살려야 할 때라는 온건적 지적들도 설득력있게 들려온다.
많은 사람들은 칼을 마구 휘두르는 「사정적인 개혁」으로 일관하고,국민 인기 위주의 개혁을 하다 보면 김영삼정부가 계속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모으기 위해 더 고단위의,또 다른 강력사정 처방을 들고 나오는 사정의 끝없는 「악순환」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개혁은 고비넘는 작업
그러나 이런 것들은 개혁에 대한 시각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의 개혁을 단순히 김영삼정부의,김영삼대통령의 개혁으로 봐서는 안될 것이다. 그가 수행하고 있는 개혁에 대해 각계가 지지를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마지막 고비」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정에 대한 우려와 불평·불안들은 대부분 지난 30여년의 부패구조 속에서 특혜받아온 계층이 그러한 특혜구조가 사라지고 없어지려 하는데 대한 불만이기도 하다. 이번 개혁작업이 마지막 고비일는지는 몰라도 이것이 개혁의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민적인 공감일 것이다. 때문에 사정과 개혁은 보다 철저하고 본질적으로 수행되어야만 한다. 정치적으로 적당히 넘어간 부분,동요가 두려워 하다 만 부분,이런 것들도 철저히 점진적으로 다시 사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개혁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끌고 가느냐하는 것이다. 김영삼정부는 이제 사정에서 개혁의 제도화로,그리고 의식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개혁플랜을 제시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그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개혁의 중단은 없을 것임을 거듭 다짐했다.
그러나 김영삼정부의 개혁 추진력은 15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되는 96년부터는 현저하게 떨어지고 말 것이다. 지금은 바짝 엎드려있는 반개혁세력이 그 이후엔 설쳐댈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받쳐줄 힘 함께 모아야
개혁의 지속성을 위해,개혁이 「김영삼의 원맨쇼」로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개혁적」 정치세력의 형성과 확산이다. 현 집권당의 모체는 군사통치시절의 군­관료­권력지향적 지식인의 복합체다. 그것이 사회 상층부에 광범하게 퍼져있음으로 인해서 개혁에 대한 의구심과 제동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새로운 개혁의 흐름을 추구하는 새로운 세력들의 결집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인위적이고,과격한 억지방법으로 이뤄져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정당과 정부의 중심에 새로운 세력을 심고,각종 선거의 조기 실시를 통해 그것을 확산해가는 노력은 시급하고 절실하다. 정치세력의 뒷받침 없는 「1인개혁」은 사상루각이 될 수도 있으므로.<통일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