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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절묘한 스릴러 영화-크라잉 게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아일랜드 출신 영국감독 닐 조던이 89년 미국으로 건너가 로버트드니로와 숀펜을 주인공으로 코미디영화 『우리는 천사가 아니다』를 만들었을 때 많은 비평가들은 이 촉망받던 젊은 작가의 역량이 너무 일찍 쇠잔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상투적인 표현으로 가득찬 지루하고 진부하기 이를데 없는 영화」라는 혹평을 이 영화에 가한 비평가들은 그가 다시 예전의 날카로운 영화적 구성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회의를 던졌다. 한때 영국영화 중흥의 기수처럼 대접받던 조던은 졸지에 적당히 상업주의에 영합하려다 망신만 당한 왕년의 스타로 전락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재기를 모색하던 그는 이제 『크라잉 게임』이라는 괴기하고 음산한 스릴러로 과거 자신의 수작인 『엔젤』 『모나리자』 등을 능가하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었다. 그가 7년 전부터 구상하던 소재를 영화로 옮긴 이 신작은 우리가 일상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을 색다른 관점에서 제기하는, 그래서 현실이 얼마나 다층적인가를 보여주는 그의 작가적 관심이 예전보다 훨씬 정교한 구성으로 드러난 역작이다. 정치·인종차별·섹스문제가 절묘하게 혼합된 이 영화는 끝까지 관객의 예상을 어지럽히는 탁월한 이야기 전개 솜씨에 있어서 만큼은 「앨프리드히치콕의 수작들에 뒤지지 않는다」는 약간 과장 섞인 해외에서의 평가도 납득이 갈 정도다.
퍼시 슬레지가 부른 왕년의 히트송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가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북아일랜드 어느 마을의 카니벌 현장에서 시작된다. 다분히 향수에 젖게 하는 이 장면은 곧 영국병사 조디(포레스트 휘태커)가 IRA(아일랜드 독립해방군)의 일원인 주드의 미인계에 넘어가 납치되면서 깨진다. 조디의 감시역을 맡게된 퍼거스(스티븐 레이)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망에 빠진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한다. 그는 곧 이 식민지 출신 흑인 병사에게 인간적인 연대감을 얻게된다. 결국 퍼거스는 조디를 자기 손으로 죽여야하는 상황에 몰렸으나 갑자기 들이닥친 영국군 장갑차에 의해 조디가 죽는 것을 목격하고 런던으로 도피하게된다. 런던을 무대로 펼쳐지는 영화의 후반부는 정치스릴러 같아 보이던 영화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면서 신념에 대한 배신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런던의 하층민 문화를 배경으로 삼아 탐구한다.
『크라잉 게임』의 탁월함은 전혀 다른 배경에서 전개되는 이 전반부와 후반부를 죽은 흑인병사 조디를 매개로 단단하게 연결시키는 작가의 구성력에서 연유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자신의 안이한 기대가 엉뚱한 방향에서 허물어지는, 황당하지만 결코 불쾌하지 않은 체험을 한다.
사실 영화를 아직도 오락이나 킬링 타임용 이상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정의·용기·사랑이니 하는 관념들이 자신의 선입관에서 지나치게 벗어난 것일 때 적지 않은 불편함을 느낀다.
이 영화의 최고 미덕은 이러한 상투형의 파괴를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 속에 성공적으로 용해시킬 수 있었다는데 있다. 그래서 삶이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단순하고 달콤한 것이 아니라는 씁쓸한 주제를 우리는 무리 없이 수용하게 된다. 아마도 오슨 웰스의 『아카딘씨』에서 빌려온 것으로 짐작되는 영화 속의 「전갈과 개구리」우화는 자신의 천성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성을 잘 요약한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집단적인 정치적 실천에 대한 사뭇 냉소적인 시각은 오랫동안 억압에 시달려온 아일랜드인 특유의 정치 허무주의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리 동의하고 싶지 않은 대목이다. 하지만 사회의 주변부에서 맴도는 인간들을 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비록 거듭된 좌절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릴 수 없음을 전해준다. <임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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