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실용적 기능 강조한 새로운 한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호 04면

손세관 -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연구와 휴식에 놓인 한옥- 하루헌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일상의 변화는 계획된 결과로 일어나기도 하고, 아주 우연히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한옥을 가지게 된 것도 그런 우연의 결과였다. 오래전부터 나는 동서양의 도시주택을 연구해 오면서, 막연하게 우리 고유의 도시주택을 하나 마련해 가꾸는 것이 작은 희망인 동시에 소명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런 와중에, 정말로 우연히 자그마한 한옥을 하나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요즈음 나의 일상은 경복궁 근처 옥인동에 마련한 한옥 하루헌과 함께한다.

종로구 옥인동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동네로서 한적한 보통의 주거지역이다. 옥인동 한옥들은 양옥과 다세대·다가구 밀집지역 안에서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는데, 한국의 도시정책과 제도 속에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기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 집은 1961년에 지어졌다. 상량(上樑) 때 올린 대들보에 그해에 지었다는 글이 남아있다. 당시 이 동네에 지어진 집들은 대형 필지가 중소형 필지로 나눠지면서 집장수들에 의해 열 채 정도의 단위로 지어졌다. 이 집도 그때 지어진 한옥 중의 하나로서 45년의 세월을 지닌 것이다. 집의 구조는 ‘ㄷ자형 도시형 한옥’의 원리에 따라 길로부터 격리된 작은 마당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밀도가 높고 필지가 좁은 도시환경 속에서 주택이 남쪽을 향하면서도 마당이라는 아늑한 외부공간을 갖는 당시의 공간사용 방식을 따른 것이다.

한옥을 구입한 당시, 그 모습은 삶의 때와 시간의 흔적으로 인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연구와 휴식을 겸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고치기로 계획했으나 주인의 감각과 마음을 잘 이해하는 목수를 만나서 함께 집을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그 때문에 집을 고치는 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한옥을 보수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을 것이다. 즉 한옥의 원리와 구조를 정확하게 지키는 ‘복원적 태도’가 첫 번째 방식이다. 나아가 현대생활에서의 실용적 기능이나 주인의 의도에 따른 ‘번안적 태도’가 또 다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후자의 방식을 취하여 ‘1960년대의 도시형 한옥’에 지금의 현대적 감각을 부가하여 ‘2000년대의 새로운 도시형 한옥’으로 개조하고자 하였다. 즉 중요한 목구조(木構造) 틀과 외관은 한옥의 본래 성질을 유지하도록 하였지만, 그 내부공간과 마당은 새로운 개념을 갖도록 했다.

따라서 하루헌은 목구조의 틀 속에 개구부(開口部)는 전통 창호와 알루미늄 창호가 적절하게 혼용되어 있다. 또한 담이나 벽과 같은 외부는 전통적 재료와 문양의 외장재로 처리되어 있다. 이러한 ‘번안적 태도’를 취하는 보수 과정에서, 처음에 일을 맡은 시공자들이 한옥의 기본적 원리를 가볍게 여기고 이를 단순히 인테리어 작업으로 생각하여서 곤란한 일들이 많이 생겨났다.

할 수 없이 한옥을 이해하는 목수를 어렵사리 수소문하였고, 나 자신이 적극적으로 디테일과 마감 등에 관해 목수와 함께 고민하였다. 여러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결과 지금의 하루헌을 만들 수 있었다. 소박한 집이지만, 그 한자의 뜻과 같이 ‘마음과 정성을 쌓아서 이루어진 집’이 되었다.

일상을 사는 집은 편안함이 그 미덕이라고 한다. 한옥은 사는 사람에게 편안함과 그것을 넘어선 어떤 특별함을 준다. 한옥과 그것을 둘러싼 골목길들은 현대의 건축이나 도시계획이 만들어낸 공간들이 미처 줄 수 없는 정겨움과 안락함을 준다.

따라서 한옥은 길지 않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따뜻한 심성을 자아낸다고 하면, 이는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라 치부될까. 그리고 한옥의 내부공간에 있으면, 전통 목가구의 아름다움을 지니는 커다란 골동품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삶에서 이와 같은 특별함을 경험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한옥은 현대의 인간생활을 수용함에 있어서도 매우 적절하고 기능적이다. 사람은 자연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편안해하고 자연스러워한다. 한옥은 자연의 모습을 잘 담고 있으며, 이로써 사람과 자연이 서로 친구가 되게 한다. 비와 눈이 오는 소리를 너무나 가까이에서 알게 하고, 해가 뜨고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변화를 듣게 해준다. 그리고 한옥은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저녁 시간의 고요함을 준다. 이는 대부분의 한옥이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옥에서 듣는 음악은 매우 맑고 청량하다. 이에 더하여,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마당의 빈 공간은 도시 속의 고요함에 그 색채와 깊이를 더해준다.

한옥이 우리에게 주는 것을 말함에 있어서, 그 공간이 현대인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아파트에 살다가 환경을 바꾸어서 한옥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강북의 한옥생활에 만족한다고 한다.
한옥은 전통과 문화를 느끼는 세련됨을 갖도록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 평수에 연연하는 우리로 하여금, 마당과 같은 빈 공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뭔가를 채우려고만 하는 욕심스러운 우리에게 여유로움과 비움의 가치를 알게 해준다. 이처럼 하나의 장소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땅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첫걸음이 아닐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