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떡, 뉴미디어를 성찰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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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18면

주위를 둘러보라.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이나 신문을 펴 놓고 보는 사람보다 휴대전화나 DMB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 다른 사람들과 더 쉽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소통에 더 목말라 하는 것 같다.

주일우의 과학문화 에세이-이미지에 걸린 과학 <8>

새로운 도구의 등장은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지만 비싼 가격과 어려운 사용법이라는 두 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최신 사양을 갖춘 휴대전화 하나만 해도 수십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다. 노트북 컴퓨터·디지털 카메라·게임기·mp3·DMB 등으로 무장을 하려면 상당한 재력이 있어야 한다.

새로 나온 도구들은 최신의 심리학이나 디자인 이론을 이용해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려고 하지만 그 도구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전에 도구와 소통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경우가 많다. 기기 사이를 무선으로 연결하는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까지 표준화가 덜 되어서 복잡한 선으로 연결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올바른 작동법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을 때는 어쩔 도리가 없다. 기껏해야 껐다 켜서 초기화시키는 길밖에 없는데 그래도 안 된다면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 도구를 사용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안다고 해도 영상과 이미지를 담은 디지털 신호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모르면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디어의 양극화를 넘어서

이러한 장벽들이 양극화를 낳는다. 흘러 다니는 광고 이미지에 눈이 가려 모두들 뉴미디어가 제공하는 화려한 세상에 살고 있으리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돈과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뉴미디어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해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이 주변에 꽤 있다. 비싼 도구를 직접 다루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그것들을 잘 다룰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곳도 있다. 올 여름에 참관했던 다음세대재단의 유스보이스 미디어 콘퍼런스도 그런 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다. 무료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참가한 청소년에게 새로운 도구를 직접 다루어 볼 기회를 제공했다.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만들고 그것을 뉴미디어에 실어 서로 나누는 방법을 알려주는 자리였다. 여느 미디어 캠프와 달랐던 점은 뉴미디어를 포함한 미디어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시도했다는 것. 뉴미디어를 다루면서 새로움이나 신기함에 눈이 팔리거나 강조하기 쉬운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우선, 소통을 위해서 소통할 거리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관찰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이런 행위는 인간이, 인간이 된 이후에 늘 하던 것들이다. 인문학적, 철학적 사유와 예술적 상상력 같은 오래된 인간의 활동에 바탕하지 않고 무엇을 서로 나눌 수 있을까?

다음은 비판적인 시각.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닌 양방향 소통을 통해서 이전과는 다른 의사 결정의 과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뉴미디어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미디어의 원리를 기초적인 도구들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디어를 포장하고 있는 블랙박스를 벗겨내는 과정을 통해 미디어가 무엇을 왜곡할 수 있고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하는지 밝힐 수 있다.

미디어의 역사 통찰
이러한 성찰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데 미디어의 역사를 곰곰이 들여다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미디어의 역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두 개만 꼽는다면 활자의 등장과 디지털미디어의 등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활판 인쇄 이전에 시각은 인식론적으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부활을 보고도 믿지 못하고 만져보고야 믿은 한 제자는 예수로부터 책망을 들었다. 밀라노의 주교는 ‘누가복음’에 주석을 달면서 “보는 것은 종종 사람을 속이지만 귀로 듣는 것은 틀림없다”고 이야기했다. 소리 내어 읽기와 듣기의 보조적인 장치로 사용된 쓰기는 오랫동안 지식을 말의 세계, 청각의 세계로 되돌려 재순환시키는 역할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인쇄는 시각에 우월한 지위를 부여했다. 쓰기에 의해 단어는 소리의 세계에서 시각의 세계로 옮겨졌고 인쇄는 이 단어들을 공간의 특정한 위치에 확정적으로 박아 넣었다. 인쇄의 공간은 논리 정연하고 앞뒤가 잘 들어맞는다. 이러한 단어의 공간적 배치는 색인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정보 전달에 추상적 활자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인쇄는 인간들 사이에서 소통하는 데 사용되던 말을 소리의 세계로부터 떼어내어 시각적인 평면에 귀속시켰고 시각적인 공간에 배치된 지식을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전자 장치를 이용한 뉴미디어는 인간들의 감각이 감지할 수 있는 신호들이 가지고 있던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넘어서게 해 주었다. 모든 감각의 재료들이 단어와 같이 텍스트로 배열될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데카르트의 정의에 따르면 물체는 어떤 모양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 즉 어떤 장소에 의해 둘러싸이고 다른 모든 물체를 배제하면서 어떤 공간을 채우는 것, 촉각·시각·청각·미각·후각에 의해 지각되는 것, 여러 가지 방식으로 움직여지지만 결코 자기 자신에 의해 움직여지지는 않고 다만 어떤 다른 것이 닿아서 움직여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만족시키는 재현물들이 뉴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져 의사소통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청소년을 위한 뉴미디어 캠프
미디어는 인간 감각의 우선순위와 의사소통의 구조를 바꾼다. 우리에게 주어진 뉴미디어는 활판 인쇄의 등장으로 시각에 매여 소외되었던 인간의 다른 감각들을 해방시켰다. 아직까지 그 결과를 평가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해방된 감각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의사 결정 방식을 점차 변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뉴미디어도 인간의 생물학적인 한계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미디어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감각 기관을 이용한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새로운 감각기관이 탄생한 적은 없다. 근본적으로 그런 한계 안에 뉴미디어가 놓여 있는데 뉴미디어가 우리를 별세계로 데려다 줄 것이라 선전하는 것은 심한 과장이다.

안타깝게도 뉴미디어의 가능성과 한계를 성찰적으로 짚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다루는 방법도 익힐 수 있는 프로그램에 학업에 바쁜 청소년들의 참여는 저조했다. 방학엔 잠시라도 입시 공부를 손에서 놓고 이런 캠프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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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역사학.환경학을 공부한 주일우씨는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에 관심이 많은 과학평론가이자 문화공간 ‘사이’의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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