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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중시하는 한국 기업인, 워싱턴 로비도 잘할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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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한국 비즈니스 리더들은 천부적인 로비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워싱턴에선 이를 살리지 못해 돈만 낭비하고 있어요.”


한인 1.5세 마크 김(Mark L Keam·41. 사진)은 미국 2대 통신회사인 버라이존의 부사장이다. 명함을 보면 그가 하는 일을 짐작할 수 있다. ‘대정부관계 담당 부사장’이다. 귀에 익은 말로 표현하면 ‘로비스트’다. 버라이존의 본사는 뉴욕에 있지만, 그의 활동 무대는 워싱턴 로비스트 거리인 K스트리트다.

김 부사장은 그 세계에선 꽤나 유명한 젊은 로비스트다. 워싱턴 정계 움직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더힐(The Hill)지가 지난 4월 뽑은 민주당쪽 유력 로비스트 25명 중 한 명으로 꼽혔을 정도다.

김 부사장은 재외동포 차세대 지도자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주 서울을 찾았다. 8년여만의 귀향이라고 했다. 중앙SUNDAY는 그를 단독 인터뷰해 국내 비즈니스 리더들이 글로벌 정치권력 중심인 워싱턴 무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들었다.

그는 먼저 현실을 진단했다. 1970년대 박동선 게이트와 최근 김창준 전 하원의원의 불법 선거자금 조성 탓에 워싱턴 정계가 한국인 또는 한국계를 경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한국인도 로비의 세계에도 윤리와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치인과 대기업 비즈니스 리더들은 여전히 유명 인사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듯합니다. 그들은 ‘단 10분만이라도 좋다. 만나게만 해달라’고 떼쓰기도 하는데, 워싱턴 로비스트들이 뒤돌아서 비웃고 있어요. 접견 기회를 전문적으로 알선하는 로비스트의 주머니만 불려줄 뿐이에요.”

접견 기회를 전문적으로 알선한다? 로비스트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K스트리트에서는 로비스트를 세 종류가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K스트리트의 로비스트 60%가 접견알선 전문입니다. 이들은 의뢰인이 정·관계 인사와 만나 내심 이루고 싶어하는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넓은 발을 이용해 양쪽의 랑데뷰를 주선해주고 거액을 받습니다.”

김 부사장은 한국 정부나 기업이 주로 의존하는 로비스트가 이 부류라고 말했다. 하지만 짧은 접견 시간 안에 속내를 털어놓고 대화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국 기업이 뒷돈으로 해결하려고 든다고 그는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 정치자금법이 강화된 이후 돈의 위력이 꽤 약해진 게 요즘 워싱턴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김 부사장이 설명하는 두 번째 유형은 문제해결 전문 로비스트다.

“그들은 전문 지식으로 무장하고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해줍니다. 이들은 K스트리트 전체 로비스트의 30% 수준입니다. 연방정부 기능이 복잡해지고 방대해지면서 전문 지식을 갖춘 이런 로비스트가 날이 갈수록 각광받고 있지요. 그런데 이들의 단점은 워싱턴 정·관계 고위급과 상대적으로 덜 친밀하다는 것입니다. ”

김 부사장은 어떤 쪽일까. 이 물음이 나오자 그의 얼굴에는 겸연쩍어 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글쎄요. 저는 양쪽에 모두 속합니다. 정보통신과 중소기업 분야를 좀 알고, 민주당 유력 정치인의 법률 보좌관으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아는 벗들도 많습니다.”

실제, 김 부사장은 1995년 UC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졸업한 이후 연방통신위원회(FCC) 변호사, 중소기업청(SBA) 법률 담당관, 일리노이주 출신 민주당 상원 원내부총무 리처드 더빈의 법률 보좌관 등을 지냈다. 그 기간 동안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 인준 업무와 통신비밀 보호법, 9.11테러 이후에는 국토안보 관련 법규, 지적 재산권, 이민법 등의 제·개정에 깊숙이 간여했다. 특히 미국 시내전화의 AT&T의 독점 체제를 무너뜨린 96년 통신법 개정의 주역이었다.

소수민족 출신인 그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한국의 대인관계 문화와 테크닉을 워싱턴에 적용했습니다. 너무나 잘 통했습니다.”
김 부사장은 업무 얘기에 앞서 학연·지연·취미 등을 거론하면서 인간적인 접점을 넓힌 뒤 본론(비즈니스)을 꺼내는 게 서울이나 워싱턴이나 모두 같다고 알려줬다. 달리 말해 시간을 갖고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탐색한 뒤 정보와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작업은 한국 비즈니스 리더들의 특기 아닌가요. 그런데 워싱턴서는 잠깐 사진 찍고 한국에 돌아가 과시하는 데 목돈을 씁니다. 역설입니다. 타고난 그 특기를 살리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연방정부의 납품권 등을 확보해 정부 돈을 ‘합법적으로’ 벌어갈 수 있습니다.”

그는 워싱턴에서도 명분이 돈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비즈니스 리더들은 자사 이익이 미국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조언했다. 이 밖에 미 기업들이 한국 정부나 기업을 위해 뛰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나 기업은 워싱턴서 직접 로비하지 않습니다. 자국에 진출한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 GE가 로비해주고 있어요. 이들 기업은 ‘의회가 중국을 압박하면 미 기업이 힘들어진다’며 의원들을 설득해요. 한국 정부나 기업이 참고할 만하지 않습니까?”

김 부사장은 민주당 사람이다. 원내 다수세력인 민주당 의원들이 한미 FTA를 어떻게 보는지 귀띔했다. “현재 민주당의 최대 목표는 대선 승리”라며 “민주당 의원들은 대선에 부담이 될 수 있는 한미 FTA를 올해 비준하지 않고 대선 이후로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의원 상당수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때문에 지역구 실업률이 높아져 한미 FTA 비준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김 부사장은 두 시간 인터뷰 내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부산한 느낌마저 줄 정도였다. 하지만 로비스트 윤리 대목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한국 기업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잘라 말했다.

“나는 박동선 등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철저하게 내 능력과 평판, 도덕성으로 워싱턴서 ‘더 인정받아’ 나중에 소수민족의 권익을 진짜 높이는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교민 사회나 모국의 환대에 우쭐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강남규 기자

WHO?
마크 김은 1966년 서울서 태어나 네 살 때인 70년 부모를 따라 베트남으로 이민갔다. 이후 호주를 거쳐 80년 미국에 정착했다. “정치하지 말라”는 부모의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시절부터 미국 정치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배럭 오바마를 위해 뛰고 있다. 자원봉사원으로 오바마 캠프에서 소수민족 표 모우기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색인종인 오바마가 자신 같은 소수민족 이익을 더 보호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 부사장과 민주당의 인연은 캘리포니아대학 얼바인 캠퍼스에 재학 중이던 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 캠프의 선거 자원봉사원으로 활동했다. 로스쿨 학생시절인 92년 대선에선 빌 클린턴을 위해 뛰었다. 대선 승리 덕분에 95년 정무직으로 통신위원회(FCC)와 중소기업청에 진출할 수 있었다. 지난 2월에는 버라이존에 영입돼 전속(In House)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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