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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은 쿨하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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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얼마 전 인터넷에서 팔리는 루이뷔통 가방의 99%가 가짜라는 보도가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명품 가방이라면 보통 가격이 얼마나 하는 거요? 한 몇 십만원 하나…?” 그러자 곁에서 한심하다는 듯 설명해 준다. “그 돈이면 유치원생 가방은 살수 있을 걸….”

 요즘 우리 사회의 명품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나이 든 보통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명품이라고는 롤렉스 시계와 버버리 코트밖에 알지 못하고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살아온 터에, 명품 얘기는 가격의 문제를 떠나 문화적 수준으로 환원돼 TV나 신문, 일상 대화에서 마구 튀어나온다.

 우선 명품은 이름 자체가 아리송한 외국어인지라 알아먹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근히 지적 열등감을 부추기는 것이다. 여기에다 비싸긴 왜 그리 비싼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게 유행이라는 얘길 들으면 슬그머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만 세상에 뒤진 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 때문이다. 이처럼 명품은 갖지 못한 사람에게 흔히 열등감과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부정적 효과는 젊은 세대에게도 마찬가지다.

 명품을 가졌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우월감과 자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아니다. 흔히 명품으로 개성을 표출한다고 하지만 유명 브랜드 상품으로 치장하는 것은 개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몰개성에 가깝다. 명품이 주는 심리적 효과는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자신도 명품 소비 집단에 끼었다는 거짓 소속감이 아닐까.

 명품이 대접을 받는 근거는 희소성이다. 드문 것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이 대중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표현하는 행위가 명품 소비다. 명품 소비에는 언제나 남의 시선이 끼어든다. 과시를 위해서든 추종을 위해서든 남을 의식하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도 특정 브랜드의 상품을 사는 것이다. 이때 그 상품은 사용가치를 초월한 기호가치(sign value)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기호가치는 특수한 종류의 가치다. 남들이 알아줘야만 가치 있는 것으로 통한다. 어떤 명품이 유행이 돼 너도나도 가질 정도가 됐다면 그것은 더 이상 명품이 아니다. ‘남과는 다르다’는 기호가치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뒤늦게 명품 구입 대열에 합류하는 보통사람에게 명품은 김빠진 맥주이며, 명품 구입은 언제나 지는 게임일 수밖에 없다.

 어느 사회이건 명품의 기호가치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액수에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명품을 소비하며 ‘구별 짓기’를 선도하는 일부 부유층이 그들이다. 이처럼 명품 소비는 부유함을 남들에게 내보이는 과시의 지표이며, 보통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소수가 누리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많은 보통사람이 명품 구입이라는 지는 게임에 동참하는 이유는 명품이 불러일으키는 착시효과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명품은 소비자의 가치를 높여 준다는 착각을 동반한다. 아무런 근거 없이 명품 소비 자체가 고상하고 품격 높은, 문화적이고 쿨한 취향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명품이 발산하는 부유함의 광채에 현혹돼 부유함이 곧 행복이요, 가치라고 여긴다. 이런 가정이 근거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명품 소비는 미국의 경제사상가 소스타인 번드 베블런이 지적한 대로 ‘과시적 소비’에 불과한 것이 된다.

 명품이 의미하는 바는 실은 그 소비자가 돈이 많다는 사실뿐이다. 결코 그가 높은 품격이나 세련된 취향을 지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부자를 부러워하는 심리는 이해가 되지만 명품이 쿨하다는 생각은 심각한 착시현상이다. 명품은 쿨하지 않다. 단지 비쌀 뿐이다.

 오늘도 많은 보통사람이 숱한 망설임 끝에 얄팍한 지갑을 열어 명품을 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손에 쥔 명품에는 그들이 원하는 가치가 담겨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명품 열기는 우리 삶의 일그러진 모습을 서글프게 증언하고 있다. 

곽한주 동아방송예술대 초빙교수·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