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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디터칼럼

남는 게 없는 경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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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점입가경이다. 레이스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난타전이다. 합동연설회는 판마다 욕설과 몸싸움이고, 입만 열면 흑색선전과 비방이다. 그야말로 ‘지독한 경선’이다. 그렇다고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도 못하고 있다. 이기든 지든 모두가 불행해질지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경선을 왜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 두 경선 후보 가운데 한 명은 8월 19일 경선에서 패하면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진다. 선거법은 정당의 경선에서 진 후보가 본선에 출마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러면 경선에서 이긴 후보가 진 후보의 지지율을 흡수할 수 있을까. 정권 교체를 바라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이긴 쪽으로 몰리겠지만 후보를 보고 지지한 사람들은 이게 어려울 것 같다. DNA 검사가 등장할 정도로 감정이 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쪽이 “온갖 비리의 집합체”라고 공격하면 상대는 “진짜로 한 방에 갈 후보는 그쪽”이라고 받아친다. 이러고 나서 진 쪽이 본선 선거운동은 어떤 논리로 할지 궁금하다. “비리 덩어리지만 한 표를…”이라거나 “네거티브엔 선수지만 찍어 달라”고 부탁할 것인가. 승패를 떠나 둘 다 윈-윈할 것이라던 당초의 기대와 희망은 물 건너가고 있다.

 경선 후 갈 길도 멀고 험하다. 진 쪽의 앙앙불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2002년 대선 때는 민주당이 홍역을 치렀다. 노무현 후보는 경선에서 이겼지만 대선 직전까지 후보 교체론에 시달렸다. 반대파들은 ‘후보 단일화 협의회’를 만들어 공개적이고 조직적으로 흔들어 댔다. 한나라당도 경선에서 진 쪽이 이긴 쪽을 끌어내릴 궁리에 열중할지도 모른다. 경선 불복 금지 조항 때문에 당을 뛰쳐나가기도 어렵다. 이판사판으로 “어차피 본선에서 질 터이니 지금이라도 후보를 교체하자”는 주장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패한 후보를 편들었던 의원들이나 원외위원장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지역구 숫자를 늘릴 묘책이 없는 한 이긴 쪽에서 함께 고생했던 동지들을 내년 4월 총선에서 잘라 내고 적장들을 공천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후보의 지지율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내홍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안에는 심지어 진 쪽이 범여권 후보와 손잡는 괴담 수준의 시나리오까지 돌고 있다.

 여기에 선거 전략에 밝은 여권의 집중포화가 더해진다. 여권은 이미 충분한 공격거리를 확보한 상태다. 제2, 제3의 김대업과 같은 새로운 폭로자를 물색할 필요도 없다. 한나라당 경선의 검증 과정에 쏟아져 나온, 그러나 명쾌하게 해명은 안 된 각종 의혹은 보물창고다. 이 의혹들을 들이대며 두들겨 패면 그만이다.

 또 있다. 경선 후 한나라당에는 한 명의 후보만 남는다. 이때부터 2등 자리는 여권 예비 후보 가운데 한 명이 차지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지리멸렬 상태인 여권의 분위기가 확 달라질 수 있다. 한나라당 경선 결과는 여권의 후보 단일화 노력을 자극할 것이고, 극적인 진전이라도 보이면 여야의 승부는 51 대 49의 접전이 될 것이다.

 이럴 바엔 한나라당으로선 어느 한쪽의 표를 일찍 죽은 표(死票)로 만들지 않고 경선을 최대한 늦췄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까지 이명박·박근혜 후보 둘 다 본선 출마 가능성을 갖고 가도록 하는 방법이다. 자신들이 1·2위 후보를 확보하고 있을 때는 양자 구도보다 다자 대결 구도가 우위를 확실히 지키는 방안이다. 최악의 경우 범여권에서 어느 한 명이 치고 올라와 두 후보를 위협하는 바람몰이를 하면 그때는 2등에서 3등으로 밀리는 쪽이 양보하면 된다. 막판에 정권 교체를 명분으로 단일화를 하면 그것 자체로 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찌 됐든 한나라당 경선은 2주 후면 끝난다. 이긴 후보가 안에서의 흔들기와 여권의 공격이란 십자포화에 노출되면서 한나라당의 진짜 시련은 시작될 것이다. 한나라당은 8월 19일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김교준 정치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