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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위기의 시대, 탈종교가 대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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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La vida eternal(영원한 삶)

Fernando Savater 지음
Editorial Ariel
256쪽, 17.50유로

 스페인 언어권-특히 출판계-에서 스페인의 페르난도 사바떼르, 아르헨티나의 알베르또 망겔, 우루과이의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등의 이름을 듣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의 글이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이다.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페르난도 사바떼르가 내놓은 『La vida eternal(영원한 삶)』(2007년) 역시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무려 50여 종에 달하는 다산 작가임에도 그의 신간이 주목을 끄는 것은 한편으로는 예민하거나 껄끄러운 현안을 놓치지 않고 기꺼이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실천하는 사상가로의 면모 탓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천착한 테마, 즉 종교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탐색에 대해 일단의 쉼표를 찍었다는 의미가 있어서다.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사바떼르의 천착은 2004년 『십계』(출판사 북스페인에서 2005년에 한국어 번역 출간)에서 이미 암시된다. ‘모세의 율법에 관한 전통과 현재성’이란 부제에서 보듯, 철학가는 서구의 유일신과 직접 ‘맞장을 뜨면서’ 십계의 항목 하나하나를 따지고 나선다. “십계에 유효기간이 있는가” "그 유효성은 무엇인가” "역사의 흐름과 그에 따른 우리 인간의 삶과 관습의 급진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에서 아직도 도덕과 윤리의 길잡이가 될 것인가”등의 물음을 던진 뒤, 십계의 용도 폐기를 주장한다.

 종교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그의 시각은 『Los siete pecados originals(일곱 가지 원죄)』(2005년)로 이어진다. 그는 원죄들을 구성하는 교만·인색·호색·분노·탐식·질투·태만 등 각각의 테마를 조목조목 재해석하면서 복잡한 서구 산업사회에서 대부분이 신학적인 용도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사바떼르는 원죄들의 기능적이고 창조적인 변화와 수용을 역설한다.

 그의 최근작 『영원한 삶』은 『십계』 『일곱 가지 원죄』의 연장선상에 있다. ‘영원한 삶’이란 작가의 주장에 의하면, 오늘날의 종교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인 사후 세계를 의미한다. 사후 세계의 존재에 대한 유무, 그것에 대한 회의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사후세계를 담보로 현대인들의 삶과 사상을 좌지우지하며 현대인들은 여전히 불확실한 신앙에 목을 매달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불가지론자인 철학자 사바떼르는 기술정보사회이자 물질만능주의 시대인 21세기의 위기는 종교 문제에 있으며, 종교적인 믿음들, 즉 신앙이 다시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논쟁의 중심에 위치한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탈종교화만이 이러한 위기들을 극복하는 현실적인 대안임을 강변한다.

 오늘날은 철학의 부재 혹은 죽음의 시대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수동적인 정의는 당대의 행동하는 철학가 사바떼르 앞에서 무색해지고 말 것이다. 독자는 그의 거침없는 독설과 역설을 듣는 동안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의 저자 버트런드 러셀의 화신 앞에 서 있는 착각에 젖을 테니 말이다.

정창<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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