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제고만이 살길이다/이석구 동경주재(특파원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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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미국같은 대일압력수단 없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관세율이 낮은 나라중 하나다. 일본은 지난 14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끝난 미국·유럽공동체(EC)·일본·캐나다 등 4대국 통상회담에서 광공업제품의 평균관세율을 1.5%수준까지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광공업제품의 평균관세율을 3.5%수준까지 낮추겠다고 했다.
이같은 수치를 보면 일본시장이 미국보다 훨씬 개방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미국이나 유럽은 일본시장이 선진국중 가장 폐쇄적이라며 시장개방을 다그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1천3백억달러가 넘는 일본의 무역흑자가 일본상품의 강한 경쟁력보다 일본시장의 폐쇄성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80년대후반부터 배타적으로 자기네들끼리 싸고 도는 일본의 사회구조를 고치자고 나섰다. 미일구조협의회(SII)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SII를 통해 일본의 지나치게 높은 저축률이나 노동시간·계열거래·행정지도 등을 지적했다. 미국은 일본에 『저축만 하지 말고 좀 써가면서 살아라』『사회간접자본확충 등 내수를 확대하라』『노동시간을 줄여라』 등 다분히 내정간섭적인 요구를 해왔다.
일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을 증명해주는 것이 바로 일본 건설시장실태다. 17일자 아사히(조일)신문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한 공사중 1백16건이 담합에 의해 낙찰자가 결정된 것으로 보도됐다. 자격심사를 통한 지명경쟁 입찰과정이 불투명,결국 정치가가 끼어들고 업자끼리 담합해 나눠 먹기식으로 낙찰자가 결정되므로 외국기업이 참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일본의 계열거래 즉 기업그룹간에 배타적으로 사고 파는 상관행은 외부기업이 뚫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 웬만큼 가격이나 품질에 차이가 없는 한 일본의 이같은 계열거래를 뚫기 어렵다.
미국은 지난해 일본에 압력을 가해 공정거래위원회로 하여금 이를 조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미국은 이처럼 일본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며 일본시장개방에 필사적으로 나서고 있으나 무역불균형은 좀처럼 시정되지 않고 있다.
그 과실은 다른 나라들이 따먹고 있다. 예컨대 쇠고기 시장개방은 호주·뉴질랜드,자동차시장개방은 독일 등 유럽세가 시장개방의 이익을 누렸다. 미국의 경쟁력이 이들 나라들에 뒤진 까닭이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미국의 「관리무역형」 대일 압력이다.
하나하나 수입목표를 할당해 일본으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하자는 것이다. 미일반도체 협정이 그 좋은 예다. 미일반도체협정에 재미를 본 미국은 잇따라 관리무역형 대일 압력을 가하고 있다. 92년 조지 부시대통령은 방일을 통해 일본에 자동차 등의 수입목표를 할당했다. 빌 클린턴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같은 미국의 압력은 가중되고 있다. 미국은 슈퍼컴퓨터 등 7개항목에 대해 수입할당제를 적용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수입할당제 이외에 일본의 무역흑자를 축소할 방법이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미국은 이같은 압력을 통해서라도 불균형을 시정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같은 힘도,경쟁력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뛰어나지도 못한데다 계열거래 등 장애요인을 제거할 압력수단도 없다. 결국 노력해 경쟁력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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