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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바람을 타고 온 민중들의 핏빛 역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바다의 성당’이라는 별칭을 가진 ‘산따 마리아 데 라 마르’ 성당이 있다. 14세기에 건축된 이 성당은 유럽의 다른 성당들이 가장 높고 가장 화려하고 가장 특별한 건물을 지향할 때, 낮고 평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가장 넓은 공간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바다의 성당을 만든 이는 왕도, 귀족도, 교회도 아니다.

행복해야 할 결혼식 날 권력을 내세운 영주에게 능욕당한 힘없는 여인, 아들에게까지 소작농 신세를 대물림할 수 없어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농노, 분풀이 대상을 찾는 주인의 채찍에 맞아죽은 노예, 배고픔 때문에 귀족들의 곡물 창고를 습격하고 공개 처형당한 노동자, 가톨릭 국가에서 배척당하고 박해받으며 살아가는 유태인, 이단 색출이라는 미명아래 마녀로 몰려 희생당하는 창녀…….

바로 이렇게 이름도 빛도 없이 모진 삶을 감내하며 살아간 힘없는 민중들이다.

역사는 아무도 그들을 기록하지 않지만, 지중해의 빛을 오롯이 받고 있는 바다의 성당은 오늘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대중성과 문학성 역사성 고루 갖춰, 스페인에서만 200만 부 판매

스페인의 현직 변호사 일데폰소 팔꼬네스는 약 4년여에 걸친 구상과 고증, 자료 수집을 통해 이 바다의 성당을 소재로 《바다의 성당》(대교베텔스만)이라는 소설을 창조해냈다. 2006년 출간된 이 작품은 출간 3개월 만에 4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고, 연속 20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현재 스페인에서만 2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 판권이 팔린 상태이다. 또한 이 소설은 스페인에서 가장 큰 화제로 떠올랐으며, 이 책으로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까지 급증했다.

이름 없는 작가의 소설 하나가 스페인을 넘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유는 아마도 그동안 왕과 귀족이나 교회를 다룬 역사소설, 그리고 화려한 찬사를 받은 한 권의 책 뒤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비슷한 팩션류 소설, 또는 성서나 기사단의 비밀을 풀어가는 소설들과 차별화된 이 소설의 특징 때문인 듯하다.

중세 봉건 영주들의 절대권력 밑에서 핍박받던 소작농들의 삶과 애환을 그리는 한편, 순수한 시민들, 특히 바르셀로나 항구에서 짐을 나르던 하층민에 의해 지어진 백성들의 성전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인 ‘산따 마리아 성당’을 다룬 휴먼 드라마는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릴 만한 충분한 감동을 지녔다.

왕과 귀족이 아닌 민중의 삶을 조명한 역사소설

스페인 까딸루냐의 농노 베르나뜨와 프란세스까의 결혼식장, 갑자기 들이닥친 영주 일행은 이 행복한 결혼식을 무참히 짓밟는다. 결혼하는 모든 농노의 신부는 영주와 초야를 치러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조항을 들먹이며 어린 신부를 참혹하게 능욕한 것이다. 영주의 만행이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갓 태어난 아들까지 죽이려 하자 주인공은 자유를 찾아 바르셀로나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자식만큼은 ‘대지의 종’인 소작농이 아니라 영원한 ‘자유인’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그러나 권위를 내세우는 냉혹한 성직자와 종교와 왕권을 등에 업고 잔인한 압제를 펼치는 귀족들에 맞서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은 고단하기만 하다.

주인공 아르나우의 삶을 따라가는 이 소설은 단선적인 기승전결식 구성을 바탕으로 영주와 농노 간의 불평등, 유럽을 휩쓴 페스트, 유태인 공동체의 삶, 종교재판소의 잔혹한 이단 심문, 독특한 까딸루냐 고딕양식의 성당 건축, 잦은 영토 전쟁 등 굵직한 역사적 배경에 사랑, 증오, 음모, 우정, 배신 등 인간 감성을 파고드는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그밖에도 이 소설에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영원한 안식처인 ‘산따 마리아 성당’을 짓는 상세한 과정이나 아르나우를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삶, 해상전투, 노예무역 등 극적인 장면들이 풍요롭게 펼쳐지고 있다.

발행: 대교베텔스만주식회사 (정가: 9,500원)

조인스닷컴(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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