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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번째 감옥가는 75세 소매치기 "바깥세상 다시 볼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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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제 감옥에 가면 사회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렸을 때 누군가 작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줬더라도 이 꼴은 되지 않았을텐데…."

지난 6일 오후 70대 노인이 서울의 한 대형백화점에서 소매치기를 했다. 30대 주부의 가방을 따고 손지갑을 털었다. 훔친 신용카드를 쓰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제 그에겐 24번째 철창행이 기다릴 뿐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절도혐의로 붙잡힌 장모(75)씨는 교도소에서 31년을 보낸 상습절도범.

구치소에 옮겨지기 전 7일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그는 70여년의 기구한 인생유전을 힘없이 말했다.

그는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부모는 돌아가셨다. 졸지에 고아가 된 그는 고모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뛰쳐나왔다. 떠돌이 생활이 시작됐다.

첫 철창신세는 22세 때인 50년 봄. "친구 자전거를 훔쳐 탔는데 친구가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영창신세를 졌지요." 그러나 교도소는 그에게 소매치기 기술을 본격적으로 가르친 '학교'였다. 터득한 '기술'로 버스 등에서 절도행각을 벌였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20대 후반에 두차례나 감옥신세를 졌다.

"세번째로 출소하니 30대 초반이 됐더군요.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손을 털겠다고 다짐하며 끓는 물에 손을 지져보기도 했지요." 그는 면회실의 플라스틱 창 안에서 검붉게 부은 손을 들어보였다. 지문이 없었다. 60년대 초 마음을 잡고 야채와 생선 행상에 나서고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자꾸 못된 버릇이 간절해졌다. 결국 유혹에 넘어갔다. 해를 거듭하며 철창행이 늘어났다.

마지막 감옥행은 99년 12월 31일. 서울에서 밀레니엄 맞이 행사를 한다는 소문에 '한 건'하기로 했다. 행사 인파 속에서 지갑을 훔치다 잡힌 그는 새천년을 유치장에서 맞았다.

2003년 6월 다시 풀려났다. 구청에서 주는 생활보조금 30만원으로 고시원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고물을 주워다 팔아 용돈으로 쓰며 지낸 평범한 생활은 6개월밖에 못갔다.

"담배를 끊고 푼돈을 모았지만 1만1천원밖에 없더라고요." 결국 지난 6일 다시 소매치기를 하다 쇠고랑을 찼다. 단 한번도 가족이나 집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는 "피곤하니 교도소로 보내달라"며 영장실질심사도 거부했다.

김한주(金韓柱) 변호사는 "초범들이 재범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관찰제도.사회봉사명령 등 교정 프로그램을 활용해 교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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