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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타, 시청자 아닌 유권자 마음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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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아닌가요.” 가수 설운도씨는 힘주어 말했다. 연예인이 특정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것에 대해 찬반 양론이 있다고 하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한나라당 박근혜 경선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대선 철을 맞아 여의도가 바빠졌다. 국회 주변만 그런 게 아니다. 여의도 방송가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스타도 빠지지 않는다.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후보 캠프는 최근 각각 수십 명씩 연예인 지지자 명단을 발표했다. 연예인 중에는 설운도씨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상당수다. “왜 교수는 되고 연예인은 안 된다는 거냐”는 주장도 있다. 14대 국회의원(민자)을 지낸 탤런트 이순재씨는 “정치는 더 이상 특수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연예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적 소신을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신중론도 있다. 이명박 후보 지지자인 연극인 유인촌씨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화예술인은 발언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감성적·정서적인 사람들 아니냐”며 “정치적 견해를 내더라도 극단적 표현은 삼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선 후보들이 연예인의 지지에 목말라 하는 이유는 유권자가 그들을 친근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대선 캠프가 연예·체육인을 합류시키기 위해 다소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 후보 지지로 분류된 스포츠 스타 A씨는 “잘 아는 선배가 강권하다시피 내 이름을 넣었다”고 말했다. 박 후보 관련 행사에 참석했던 B씨도 “선배가 밥이나 먹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가 졸지에 지지자가 돼 버렸다”며 난처해 했다. 연예인들이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이 후보 지지자 중엔 개인적 인연에서 출발한 사람이 상당수다. ‘뽀빠이’ 이상용씨는 “고려대 선배인 이 후보와 오랫동안 가깝게 지냈는데 도와 달라는 요구를 어떻게 거절하느냐”며 웃었다. 드라마 ‘임꺽정’으로 인기를 끈 탤런트 정흥채씨는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 후보를 다룬 드라마 ‘영웅시대’에 출연하면서 호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유인촌씨도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 후보 역할을 맡았다.

박 후보 지지 연예인 중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이 많다. 탤런트 전원주씨는 “아버지가 시해됐을 때 박 후보가 휴전선부터 걱정했다고 들었다”며 “지금도 박 후보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탤런트 선우용녀씨는 “박 후보는 이미 (청와대) 경험을 했고,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대통령이 되려는 분이 아니지 않으냐”고 강조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지지 이유를 찾는 사람도 있다. 탁구 스타 유남규씨는 “이 후보가 엘리트 스포츠 발전에 관심이 많아 지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프로농구 감독 최희암(전자랜드)씨는 “스포츠는 위기 관리가 중요한데 박 후보가 한나라당의 위기를 잘 넘기는 걸 보고 호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선전에 뛰어든 연예인의 눈에는 정치가 어떻게 비칠까. 탤런트 윤용현(이 후보 지지)씨는 22일 한나라당 제주 합동연설회에 참석했다가 깜짝 놀랐다. 당시 이·박 두 후보 지지자들은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의 부하 역할을 맡았던 윤씨는 “드라마에 나온 자유당 시절 정치와 하나도 다를 게 없더라”며 혀를 찼다. 그는 “두 후보가 시킨 일도 아닐 텐데 지지자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지 후보를 밝힌 연예인 중에는 밀었던 사람이 떨어질 경우 선거가 끝난 뒤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유명 연예인 C씨는 기자와 만나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밀었던 일부 연예인이 대선 전후에 TV·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하게 된 경우가 있다”며 “꼭 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방송사 연말 시상에서 제외된 사람도 있다”고 주장했다. 유명 연예인 D씨는 “지지한 후보가 떨어진 뒤 공공기관 주최 행사에서 사회를 맡기로 했던 계획이 모두 취소됐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경선이 끝나기 전에 한쪽을 지지하긴 부담스럽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길에서 봉변을 당한 경우도 있다. 11일 박근혜 후보 지지 행사에서 사회를 맡았던 방송인 유쾌한씨는 “행사 며칠 뒤 한 30대 남성이 길에서 폭언을 하며 옷을 잡아채 상처를 입기도 했다”고 말했다. 연예인의 정치적 견해 피력이 일상화된 미국 할리우드에선 이처럼 선거 결과에 따라 불이익을 받았다는 주장은 듣기 힘들다. 대신 또 하나의 차이점이 있다. 대선 후보 지원에 나선 연예인 가운데는 평소에도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혀온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2004년 대선에서 민주당 존 케리 후보를 지지했던 영화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평소 환경문제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내왔다. 그가 케리를 지지한 것도 주로 환경정책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지지하고 있는 배우 조지 클루니는 수단 다르푸르 집단학살 문제 해결에 대해 오바마와 뜻을 같이해 왔다. 우리나라처럼 선거 때가 돼서 갑자기 목청을 높이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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