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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클로즈 업] "솥바위 부근서 國富 3명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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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군과 함안군 경계에는 남강이 흐르고, 그 남강의 중간에는 흡사 솥단지처럼 생긴 바위가 하나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 바위를 '솥바위'(鼎巖)라고 부른다. 이 바위는 물속에 반쯤 가라앉아 있는 형국인데, 동네 사람들 이야기로는 물속에 솥단지의 다리처럼 세 발이 달려 있다고 한다. 솥도 구분이 있다. 다리가 없는 솥은 부(釜)라 하고 다리가 있는 솥은 정(鼎)인데, 솥바위는 다리가 있기 때문에 정(鼎)에 해당한다.

솥바위는 10여명 정도가 앉아 놀 만한 공간으로 때로는 사람들이 올라가 낚시를 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이곳을 '정암진'(鼎巖津)이라고 불렀다. 남강을 건너던 나루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령군 쪽에서 뻗어온 암맥(岩脈)이 힘차게 뻗어가면서 남강 가운데까지 돌출돼 나갔으므로 나룻배를 대기 좋은 지점이었다.

지맥이 힘차게 내려와 강물 쪽으로 뻗어나간 지점은 풍수적으로 보아도 명당이다. 용과 호랑이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본다. 이러한 포인트는 바위에서 나오는 화기(火氣)와, 물에서 나오는 수기(水氣)가 교접하면서 묘용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바위의 화기는 호랑이와 인물로 보고, 물에서 나오는 수기는 용과 재물로 보기도 한다.

솥바위가 있는 정암진은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왜적을 격파하던 전적지이기도 하다. 1592년 5월 하순께 왜군들은 함안 쪽에서 의령 쪽으로 넘어오기 위해 정암진 도하 작전을 전개했다. 일종의 상륙작전이었다. 이 정보를 미리 입수한 곽재우 장군은 매복하고 있다가 건너오던 왜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정암진은 군사적인 요충지라서 그 의미가 매우 컸다. 이곳이 뚫렸다면 왜적은 호남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정암진 승전은 임진왜란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솥바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곳에서 부자가 배출된다는 전설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어느 도인이 이 솥바위에 앉아 놀면서 "앞으로 이 근방에서 나라를 크게 울리는 국부(國富) 세 명이 태어날 것이다"라는 예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 솥바위 인근에서 삼성(三星)의 호암(湖巖) 이병철, 금성(金星: 현재는 LG로 바뀜)의 연암(漣巖) 구인회, 효성(曉星)의 만우(晩愚) 조홍제가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세 그룹의 창업자들이 솥바위로부터 반경 20리 이내에서 탄생했다. 의령군 정곡면 증교리에서 이병철이 태어났고,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에서 구인회가, 함안군 군북면 신창마을에서 조홍제가 태어났다. 이 세명의 생가는 솥바위에서 따져보면 남과 북, 그리고 동남방에 자리잡은 셈이다. 세 사람 모두 솥바위에서 직선거리로 20리 거리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이 세 사람이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점이다. 진양군 지수면에 있는 지수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지수 초등학교 동창들이라는 말이다.

필자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2002년 초에 지수 초등학교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어떤 터에 학교가 자리잡았기에 큰 부자들을 배출할 수 있었는가도 관심사였다. 지수 초등학교의 위치는 구인회씨 집에서 가까웠고, 구씨들이 사는 동네 바로 옆에는 허씨들이 살고 있었다. 허씨라고 하면 삼양통상의 허정구(許鼎九)도 포함된다. 알고 보면 구씨들과 협력하여 LG를 공동 창업하였던 허정구씨도 지수 초등학교 출신이다.

솥바위를 둘러싼 경남의 의령군.함안군.진양군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솥바위 전설을 듣고 자랐다. 의령 출신으로 정암진 일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하임조(우주산업 대표)씨는 강변으로 소에게 풀을 뜯어 먹이려 가는 아버지를 따라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저기 강물 속에 있는 바구(바위) 이름이 뭔지 아나?" "솥바구라 카데예" "하모, 솥바구다. 밥도 해묵고 국도 끓여 묵고 하는 솥이다." "솥 맨치로 생기지도 않았는데예?" "아이다. 물 우(위)에 비(뵈)는 저건 소 디빙이(소뎅) 뿐이다. 물 속으로 자멱질해 들어가 보믄 억시기 큰 솥 몸도 있고, 또 억시기 큰 솥 다리 세 개가 강바닥에 박혀 있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많이 흐르면 솥이 넘어지겠네예." "아이다. 무지무지하게 지프게(깊게) 박혀서 끄떡없다. 수 천년 수 만년 동안 솥바구는 저기 저렇게 있었는 걸." "저기 물 짚어예?" "하모 짚으고 말고. 명주실 한 구리를 풀어내려도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지프단다." "오메! 그라믄 예, 저건 누구네 솥이라예?" "글쎄나… 아마도 용왕님의 솥인 것 같아…" "용왕님? 토깡이(토끼)가 거북이 타고 가서 만났다는 그 용왕님?" "하모." "그런께네, 저 솥바구 다리는 용궁의 정지(부엌) 부뚜막에 걸려 있을끼구만…" "!!!…" 하씨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용왕님이 밥도 해 잡수시고 국도 끓여 자시는 용궁의 솥이 여기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그때부터 솥바위를 우러러 보았다. 아침.저녁으로 지나갈 때마다 솥바위에 인사를 했다. 초등학교 들어가 한글을 매우면서 이름 석자 다음으로 쓴 글씨가 '솥바위'였을 정도였다('배곡'의령군 향우회). 솥바위는 이처럼 전설적인 바위였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에게 '솥'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밥'과 관련 있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 한국 사람은 밥을 먹고 산다. 그 밥을 짓는 기구가 솥이다. 말하자면 한민족의 밥줄이자 생명줄이 솥단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솥은 한국 불교의 미륵신앙과도 관련이 깊다. 한국 미륵신앙의 발원지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다. 금산사에는 10m 크기의 미륵불을 모셔 놓은 미륵전이 있다. 그런데 이 미륵불의 발바닥 밑에는 쇠로 만든 솥이 놓여 있다. 불교적 표현으로는 '수미좌'이지만, 보통 이 근방 사람들은 '쇠솥'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금지돼 있지만, 30년 전만 하더라도 금산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참배가 끝나면 이 미륵불 발 밑의 '쇠솥'을 손으로 한번씩 만져보는 습관이 있었다. 나도0 어렸을 때 어른들을 따라 이 쇠솥을 두 손으로 만져보던 기억이 난다. 미륵전의 솥을 손으로 만지면 복이 온다는 소박한 믿음이었다. 불교 신앙이 없더라도 금산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미륵전의 솥단지를 꼭 만지고 가는 것이 관례였다. 우리 민족의 깊은 무의식에서 솥단지는 밥을 담는 그릇이자, 생명의 그릇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 역사에서 미륵신앙은 역사적 전환기에 유행했다. 미륵이 나타나 고통받고 있는 민초들을 구제해준다고 믿었다. 그 고통이란 무엇이겠는가. 바로 배고픔이다. 쌀밥에 쇠고기 국이 한국 사람들의 행복이었다. 미륵은 한국적 메시아였다. 미륵신앙의 발원지인 금산사 미륵불의 발 밑에 솥단지가 있다는 사실은 그 상징하는 의미가 심장하다. 미륵은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금산사 주변의 김제평야는 한국에서 가장 넓은 곡창지대다. 호남 사람들이 그 많은 쌀을 가을에 추수한 뒤에 일종의 '추수감사제'를 올리던 곳이 금산사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쌀이 어디서 나왔느냐? 바로 미륵불 발 밑의 솥단지에서 나왔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구한말 전북에서 발생한 민족종교 지도자들의 호를 보면 솥단지와 관련이 많은 사실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강일순(姜一淳:1871~1909)의 호가 시루 증(甑)자를 써서 증산(甑山)이다. 시루는 솥단지 위에 얹는 물건이다. 민초들에게 떡을 만들어주겠다는 의미다. 원불교의 2대 지도자인 송규(宋奎:1900~62)의 호는 정산(鼎山)이다.

삼성.금성.효성이라는 작명도 공교롭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모두 별 성(星)자가 들어 있다. 기업의 작명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 세 기업이 모두 별 성자를 집어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의령 출신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야기에 따르면 鼎巖(솥바위)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솥바위에서 국부가 난다는 전설을 의식한 작명이라는 것이다. 솥단지의 다리가 세 개라는 사실을 유념한 이병철은 석 삼자를 써서 삼성(三星)이라고 짓지 않았나 싶다. 풍수에서 솥바위 자체는 별로 본다. 그런데 그 별은 다리가 세 개였으니까. 그 다음에 구인회는 '황금 별'이라는 의미의 금성이었고, 조홍제는 '새벽 별'이라는 의미로 효성이라고 지었지 않았을까. 물론 추측이긴 하지만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병철의 호인 '호암'도 같은 맥락이다. 구인회의 호는 연암이다. 그런가 하면 허정구(許鼎九)의 이름 석자에도 정(鼎)자가 들어간다. 모두 정암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솥단지와 밥이 내포되어 있다.

주역의 64괘 가운데 화풍정(火風鼎) 괘가 있다. 위에는 불을 상징하는 이(離)괘가 있고, 아래에는 바람을 상징하는 손(巽)괘가 놓여 있는 형태가 화풍정 괘다. 밑에서 바람을 지피면 위에서 불이 활활 타오름을 상징한다. 불이 활활 타면 솥단지에 먹을 것을 놓고 팔팔 끓인다. 이 괘는 매우 상서로운 괘이기도 하다. 약단지에 여러 약재를 놓고 팔팔 끓이면 약물이 되어 나온다. 서로 이질적인 약재들이라 할지라도 솥단지에서 달이면 상극하는 요소가 녹아 버리고 오히려 상생하는 약물로 화학변화를 일으킨다. 화풍정 괘는 바로 그런 상황을 암시하는 상서로운 괘이기도 하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괘이기도 하다. 상극을 상생으로 전환하는 괘이기 때문이다.

남강에 놓여 있는 솥바위를 보면서 부자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사회학적 시각에서 부자를 보면 정경유착의 산물이라고 하겠지만, 풍수적으로 보면 솥바위의 지령(地靈)을 받은 것이다. 지령을 받아서 어쨌다는 것인가. 민족의 밥을 짓는 솥단지가 됐으면 좋겠다. 옛날에는 그 솥단지가 미륵의 발 밑에 있었지만, 지금은 대기업의 발 밑에 있다. 2004년 새해는 온갖 이질적인 요소들을 솥단지에 넣고 팔팔 끓여 민족의 보약, 우리 민족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밥을 짓는 한해가 됐으면 한다.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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