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관들 욕설 사라지고 화장실엔 비데까지 설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0호 02면

16일 오후 4시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 종합각개전투장. 30연대 1중대 소속 훈련병들이 “와-”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연방 목표 고지로 올라왔다. 출발지점에서의 거리는 600m. 1개 분대 11명으로 조를 이룬 훈련병들은 하나같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논산 훈련소는 지금

일부는 다리가 풀린 듯 후들거렸다. 복장은 땀과 진흙으로 범벅이 됐다. 얼굴에 칠한 시커먼 위장크림만 그대로였다. “괜찮으냐”는 질문에 전일섭 훈련병이 “전혀 힘들지 않다”고 반격했다. “해냈다”는 뿌듯함이 얼굴에서 묻어났다. 각개전투는 낮은 포복과 높은 포복, 총검술과 사격으로 철조망 등의 장애물을 넘어 적진을 점령하는 훈련. 5주 동안의 과정 중 4주차에 실시하는 훈련의 꽃이다. 훈련병들은 이날 같은 코스를 두 번 돌았다. 예나 지금이나 훈련병들이 파김치가 되는 것이 각개전투다.

김상호 훈련소 정훈참모(중령)는 “힘든 만큼 종합각개전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훈련병들이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훈련장은 많이 달라졌다. 교관들의 욕설이 사라졌다. 절도 있는 지시와 통제만 있었을 뿐 막말이 없었다. 구급차가 대기했고, 전투복은 세탁공장으로 보내졌다(훈련병은 속옷과 양말 등만 자율시간에 세탁한다).

사정은 화생방 훈련장도 마찬가지였다. 훈련병들이 입소해 5주 동안 이수하는 과목은 각개전투를 비롯해 모두 14개. 250시간에 걸쳐 이뤄진다. 이 사이 훈련병들은 150~200㎞를 걷거나 뛰게 된다. 훈련장 이동, 구보, 5주차의 완전군장을 포함해서다. 훈련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강한 훈련은 훈련소장(장종대 소장)의 지휘 방침 가운데 하나다. 장 소장은 “야전부대에서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부모들이 아들을 보고 늠름해졌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의 교육을 하고 있다”며 “훈련병들은 강화된 훈련에 불만을 나타내기보다는 이를 통해 보람과 자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후 5시 27연대 2교육대 막사. 훈련병들의 생활관(내무반)이 있는 시설이다.

‘당신은 지금! 폭언·욕설 청정지역에 있습니다.’ 입구에 붙여놓은 글귀가 한눈에 들어왔다. 현역병인 분대장이나 간부를 겨냥한 것이었다. 2년 전 다른 연대 중대장이 훈련병의 용변 뒤처리를 문제삼아 대변을 손가락에 묻혀 입에 넣었다가 빼도록 한 사건에 대한 반성도 녹아 있는 듯했다. 생활관에서 쓸데없는 ‘각’을 세우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가혹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의 하나가 화장실 내 ‘비화(秘話)’다. 화장실 좌변기 중 한곳에 ‘장병 기본권 상담전화’를 설치했다. 구타나 가혹행위를 당하거나 병영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때 사용한다. 방법은 전화기 옆에 붙어있는 휴대전화 번호를 누른 뒤 음성안내에 따라 주민등록 번호를 입력하면 감찰부에서 은밀하게 상담해준다. 소리를 내 통화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비밀이 보장된다. 박동욱 27연대장(대령)은 “훈련이 힘든 만큼 생활관은 훈련병들이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막사 시설은 현대화됐다. 생활관은 아직 침상이지만 분대원이 지내기에는 넉넉하다. 칼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개인 관물대는 목제에서 철제로 바뀌면서 커졌다.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바뀌었고, 세면장에는 샤워 장비가 갖춰졌다. 화장실엔 자동식 비데도 설치했다. 한 중대당 7대다. 치질 환자를 배려해서다. 목욕은 주 2회 이상, 샤워는 수시로 한다. 소대 인원이 한꺼번에 세면장에 들어갔다가 30초만에 씻고 나오기도 했던 20여 년 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일과에서 개인 정비, 자유시간도 많이 늘어났다. 번갯불에 콩을 굽는 듯 돌아가는 병영생활이 아니다.

급식은 1식4찬. 꼬리곰탕에 닭백숙까지 나온다. 신세대 식성을 감안해 불고기·치즈 버거(월 4회), 치킨·샐러드 버거(월 3회), 떡볶이(월 2회)도 배식한다. 훈련병은 부모와 육군훈련소 홈페이지(www.katc.mil.kr)를 통해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부모·친구·애인으로부터 하루에 800~1000통의 편지 글이 연대로 올라온다고 한다. 훈련소 측은 이 편지를 출력해 훈련병에게 전달한다. 답장은 부모에게만 가능하며, 기간병이 대신 입력해준다. 외부와의 통화는 원칙적으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인센티브 부여 차원에서 상점이 많은 훈련병에게는 전화 통화를 허용한다.

그렇지만 훈련소도 엄연한 병영이다. 벌점을 많이 받은 훈련병은 군기 확립 차원에서 얼차려를 받는다. 분대장 이상 간부가 연병장·복도 등 공개된 장소에서 팔굽혀펴기, 앉았다 일어서기, 단독군장 보행 등을 시킨다. 입소 이후 훈련소를 나갈 때까지는 금연이다. 개인 건강과 훈련에 필요한 체력 유지를 위해서라고 한다.
6월 11일 입소해 부대 배치를 앞둔 김현수 훈련병은 “입소 때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고, 스스로 강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환빈 훈련병은 “입소해 7㎏을 뺐다”며 “힘든 훈련과정이었지만 뿌듯하다”고 했다.

훈련소 측의 고충도 적잖다. 체력이 달리는 훈련병이 많기 때문이다. 김상호 중령은 “겨울철이 되면 감기 환자가 한둘이 아니다”며 “입소 전에 달리기 등으로 체력을 단련해서 오면 한결 수월한 훈련병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