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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의 뜻' 읽는 참여정부 금융감독 마무리 투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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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12면

김용덕 신임 금융감독위원장 [중앙포토]

김 보좌관은 다음달 3일 3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윤 금감위원장과 여러 면에서 다른 업무 스타일을 보일 전망이다. 윤 위원장은 큰 그림을 그리고 소신껏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의견이 달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김용덕 신임 금융감독위원장

김 보좌관은 조용하고 꼼꼼하다. 좀체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다. 정책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는 성실한 것으로 과천 관가에서 유명하다. 국제금융정책국장 시절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혼자 사무실에 남아 다음 주 업무를 준비했다. 그는 업무를 끝까지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밑에서는 치밀하게 일을 진행하는 부하 직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건설교통부 차관 재직 시절 김 보좌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꼼꼼하고 치밀한 업무 스타일을 좋게 평가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지나치게 세밀하게 업무를 챙기는 바람에 밑에 권한을 주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윤 위원장이 화려한 보스형 최고경영자(CEO)라면, 김 보좌관은 관리형 CEO다. 생명보험회사 상장과 같은 난제를 뚝심으로 밀어붙여 해결한 윤 위원장과 같은 리더십을 그에게서는 찾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또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내년 2월까지는 7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만큼 금산분리 원칙(재벌의 은행소유 금지) 완화와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책 등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들은 뒷전으로 밀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 금융계 인사는 “청와대는 김 보좌관이 참여정부의 정책들을 잘 마무리해 주길 바랄 것”이라며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금융허브,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 등의 정책에 주안점을 둘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경제보좌관으로 재직하면서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에 강한 애착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맡겨진 일만 수동적으로 처리하는 인물은 아니다. 관세청장 재직 당시 그는 관세 행정을 확 바꿨다. 예전에 9.6일씩 걸리던 수출입 물류 통관시간을 4.5일로 단축했다. 관세청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통관시간 단축으로 기업들은 연간 2조2000억원의 물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또 건건이 부과되던 관세를 매달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세금월납제도’를 도입해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줬다. 이 덕분에 관세청은 2004년도 정부혁신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용산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김 보좌관은 행정고시 15회로 1975년 재무부(옛 재경부) 공무원으로 공직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의 재경부 시절은 화려하지 못했다. 국제기구과장, 국제금융심의관, 국제금융국장, 국제업무정책관 등 상대적으로 한직으로 통했던 국제금융 분야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금감위의 한 관계자는 “국내금융 분야는 주로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소위 KS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며 “그는 KS라인의 벽에 부닥쳐 국내금융 분야로는 진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 덕분에 그는 국제금융 분야에만 매진, 이 분야 최고 전문관료로 입지를 굳혔다. 금감위의 한 관계자는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재무부 장관)은 수년 전 ‘김용덕이 국제금융에 가장 정통한 공무원이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2003년 관세청장 재직 당시 재경부가 역외선물환(NDF) 시장을 통해 무리하게 환율방어에 나서자 그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결국 정부는 2004년 NDF 거래로 수조원의 손실을 봤다. 그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는 평소 시장과의 대화를 중시했다. 국제금융국장 재직 시절 그의 지론은 “시장의 기능을 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그립’을 놓치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직접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구두 개입을 선호했다. 시장기능을 존중하되 그립은 잡겠다는 그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국내 금융감독 정책의 수장이 될 그가 국내금융 경험이 거의 없는 것은 큰 약점으로 꼽힌다.

2005년 건설교통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각종 부동산 대책을 입안했다. 2005년 ‘8·31 대책’도 그의 작품이다. 관세청의 정부혁신 최우수기관 선정과 건교부 차관으로서 부동산 대책을 꼼꼼히 챙긴 점 등이 돋보여 그는 지난해 11월 경제보좌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같은 용산고를 나온 점도 그의 청와대행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가에서는 이 전 총리가 그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경제보좌관으로서 그는 부동산 문제 해법을 다른 데서 찾았다. 이전에 청와대 경제라인이 세금으로 부동산 문제를 풀려고 했다면 그는 시중에 풀린 과잉 유동성(돈)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문제에 접근했다. ‘세금폭탄’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휘둘렀던 청와대가 부동산 정책을 과잉 유동성 회수로 방향을 튼 데는 그의 공로가 컸다. 그는 또 금리인상을 꺼렸던 재경부를 설득,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길을 열어줬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와 같은 김 보좌관의 부동산 해법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주가 급등 요인 역시 과잉 유동성에서 그는 찾았다. 정부 당국이 주식신용융자를 규제한 데는 그의 입김이 작용했다. 이에 따라 취임 이후 그가 주택담보대출과 주식신용융자 제한조치를 더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신임은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가는 곳마다 혁신매뉴얼을 만들 정도로 ‘혁신 전도사’로 꼽힌다. 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에 따라 그의 취임으로 인해 금감위와 금감원의 위상이 강화될 것이란 전망과 함께 ‘코드 정책’에 대한 우려도 있다.

금감위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정부 부처 간 이견을 잘 조율해온 만큼 금감위원장에 취임하면 재경부·한국은행과 호흡을 잘 맞출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일각에선 “윤 위원장이 고수해온 굵직한 정책들이 사장될 수 있다. 그는 청와대의 뜻에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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