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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K家 사촌 간 분가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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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18면

최태원 SK그룹 회장 /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SK그룹 총수인 최태원(47) 회장이 보유 중이던 SK케미칼 지분 5.86%를 25일 모두 매각하면서 ‘최씨가의 분가(分家)’가 재계 이슈로 떠올랐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SK그룹과 SK케미칼의 지분 고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룹은 ‘따로 또 같이’ 2세들은 ‘같이 또 따로’

지분 정리 이전에도 SK케미칼은 최 회장의 사촌인 최창원(43·창업자인 고 최종건 회장의 셋째 아들) 부회장이 사실상 독립경영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시장에선 “SK그룹이 사촌 간 계열 분리를 선언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4월 SK가 지주회사 전환을 발표했을 때도 SK케미칼이 자회사 명단에서 빠졌던 터라 조만간 오너 2세 간 분가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렸다.

SK는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이 작고한 뒤 동생인 고 최종현 회장이 그룹을 승계했다. 최종건 회장은 윤원(2000년 작고), 신원(55·SKC 회장), 창원을, 최종현 회장은 태원(그룹 회장), 재원(44·SK E&S 부회장)을 각각 뒀다.

그러나 “당장 분가는 없다”는 것이 SK 측의 반응이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경영권과 직접 관련이 없는 지분을 매각한 것”이라며 “독립 기업별 책임경영을 위한 지분 정리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분가설에 대해서도 “두 집안 모두에 전혀 실속이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최신원·창원 형제 측이 ‘SK’라는 브랜드나 그룹 네트워크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SK케미칼 측도 “지분 매각은 예상했지만 그것이 SK그룹과의 결별은 아니다”고 밝혔다.

분가 얘기만 나오면 SK가 단골처럼 내놓는 슬로건이 ‘따로 또 같이’ 경영이다. 이 말은 “계열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생존·발전 방안을 모색하되 그룹의 브랜드와 기업문화를 공유한다”는 뜻에서 2005년 3월 그룹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처음 사용한 조어(造語). 계열 회사의 ‘따로’ 경영을 기반으로 해 지주회사가 ‘같이’ 움직인다는 의미다.

그런데 오너 4형제의 움직임은 이와는 대조적이다. 오히려 ‘같이’를 외치면서 ‘따로’를 모색한다고 보는 것이 나을 듯하다.
일단 이번 지분 매각의 ‘최대 수혜자’로 최창원 부회장이 주목받는다.

지금은 어엿한 중년의 경영인으로 성장한 최창원 부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기로 유명했다. 1970년대 SK그룹이 MBC 프로그램 ‘장학퀴즈’를 후원할 때 일이다. TV를 지켜보던 고 최종건 회장이 “우리 집안에도 장학퀴즈에 나가 장원할 사람이 있을까”라고 넌지시 물었다. 최 회장의 동생인 최종관씨가 “창원이가 있잖아요”라고 대답하자 최 회장은 껄껄 웃기만 했다.

창업주 가족만 그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최 부회장을 ‘부하’로 데리고 일했던 유승렬 전 SK그룹 구조조정추진본부장은 “(최 부회장은) 큰 그림을 제대로 그리는 오너 경영인”이라며 높은 점수를 준다.

최 부회장은 지난 수년간 몸을 낮추면서 차분히 ‘이륙’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최 부회장을 만나는 지인들은 그의 골프 실력에 놀란다. 2~3년 전만 해도 최 부회장은 “시간이 아깝다”며 골프채도 잡지 않았던 인물. 그런데 2005년 본격적으로 골프 연습을 시작하더니 최근엔 일주일에 한두 차례 골프장에 나간다. 그의 한 측근은 “불과 2년 만에 80대 초반은 거뜬히 치는 실력이다. 한번 파고들면 끝장을 보는 성격 덕분에 조만간 싱글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만나는 사람의 범위가 늘어나고 있다”며 최 부회장의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부회장이 SK에 입사한 것은 94년. SK케미칼의 전신인 선경인더스트리 전략기획실장(이사)으로 옮긴 것이 97년이다. 이때부터 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60개월치 명예퇴직금을 주면서 화섬 부문의 인적 구조조정을 밀어붙인다. 삼양사와 합작, 폴리에스테르 섬유사업부를 떼어내 휴비스를 만든 것도 이 무렵이다. 나중엔 워커힐·SK건설·SK네트웍스 등 주요 계열사를 돌면서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당시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SK의 한 임원은 “한번 결정한 일은 무조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 영락없는 ‘리틀 최종건’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꼬치꼬치 캐묻기 좋아하는 최 부회장을 두고 “생전의 최종현 회장이 ‘저 녀석이 내 자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최 부회장은 꾸준히 SK케미칼 지분을 매집해 왔다. 5~6년 동안 사 모은 이 회사 주식이 7월 27일 현재 8.85%에 이른다. SK케미칼은 SK건설을 비롯해 휴비스·SK유화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자산은 4조원대, 매출은 5조원에 달해 단숨에 재계 30~35위권(공기업 제외)에 오를 수 있다. 안상희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SK건설 상장 기대 수익 3200억원, SK케미칼 수원 공장부지 가치 6000억원을 포함해 1조원에 이르는 유동성을 만들 수 있다”며 ‘리틀 SK’에 높은 점수를 매긴다.

한편 그의 친형이자 오너 형제의 좌장 격인 최신원 SKC 회장도 독자경영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엔 “앞으로 10년을 보고 투자해야 한다”며 폴란드 지에르조니오프 특구에 광학용 필름공장 설립을 주도하는 등 공격적 경영을 펼치고 있다.

한 가지 변수는 서울 광장동의 워커힐호텔이다. 워커힐은 73년 3월 그의 부친인 최종건 회장이 인수한 회사. 아버지의 ‘마지막 사업’이 되다 보니 그로선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최 회장의 ‘워커힐 사랑’은 유별나다. 날마다 호텔을 산책하는 것은 기본이다. 워커힐에서 최 회장은 ‘아이디어맨’으로 통한다. 이 호텔 베이커리 ‘델리’에서 내놓은 80여 개 제품 가운데 4분의 1이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타피오카가 들어간 ‘포빌리아’ 빵이나 복분자 케이크 등이 최 회장의 ‘작품’이라고. 한식당 ‘온달’의 인기 메뉴인 ‘해신탕(삼계탕에 전복·낙지 등을 넣은 여름 보양식)’ 역시 그가 메뉴 개발을 권유했다고 한다.

SKC의 지난해 매출은 1조2118억원. 여기에 SK텔레시스(3545억원), 워커힐(2835억원)을 더하면 1조8000억원대가 된다. 자산 규모는 2조 1000억원대에 이른다. 다만 부족한 지분이 문제다. 최 회장은 현재 SKC 주식 94만1250주(2.68%)와 워커힐 주식 4만7026주(0.59%) 등을 갖고 있다. SKC는 SK㈜가, 워커힐은 SK네트웍스가 각각 43.64%, 40.6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그에겐 최태원 회장과 ‘대타협’이 필요하다. 두 사람 사이엔 “최태원 회장이 분가 조건으로 A사의 지분을 제시했다” “최신원 회장이 계열 B, C사에 대한 경영권을 요구했다”는 등의 얘기도 들린다.

최재원 SK E&S 부회장은 분가와 관련해 아직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 2005년 10월부터 그룹의 가스 사업 지주회사인 SK E&S를 맡고 있는 그는 러시아 육상광구 탐사, 중국 도시가스 진출을 지휘하는 등 해외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눈치다. SK관계자는 “아직 시기상조지만 형제간 분가 구도를 그려본다면 향후 그는 가스 부문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분가 논란의 정점에 있는 최태원 회장은 짐짓 여유가 있어 보인다. SK그룹은 이달 초 SK에너지·SK텔레콤·SK네트웍스·SKC 등 7개 자회사로 구성된 지주회사 체제를 출범시켰다. 지주회사인 SK㈜ 지분이 0.91%에 불과해 자신이 대주주인 SK C&C를 통해 그룹을 간접 지배하는 형식이지만 현재로선 이런 지배구조에 ‘이상 징후’는 없어 보인다. 그룹의 사령탑 격인 SK㈜ CMO실이 계열사 경영방침, 임원 인사 등을 ‘조율’하는 것도 변함이 없다. 이번 SK케미칼 매각으로 그가 확보한 자금은 978억원이다.

SK그룹은…

18세의 나이에 견직기사로 출발한 최종건 회장이 1953년 적산기업이던 선경직물을 인수, 원사·석유·호텔 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으로 키웠다. 73년 그의 뒤를 이은 동생 최종현 회장이 유공(현 SK에너지)·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등을 인수하면서 국내 3대 재벌로 성장시킨다. 최 회장이 타계하자 가족회의를 거쳐 그의 장남인 최태원 회장이 대권을 물려받았으나 사촌 간 지분 정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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