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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를 죄인취급하다니…”/침통한 직업군인·가족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전방생활 13년,열두번 이사 불평안했는데…/군인아파트 주변엔 웃음소리조차 사라져
해군인사비리의 불씨가 군수산업 등 국방행정 전반에 걸친 비리의혹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이를 바라보는 현역군인과 군가족들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이번 파문이 언젠가 한번은 치러야할 홍역으로 군내부의 구조적 비리를 척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일부 부패군인들 탓으로 군 전체가 곪아터진 모습으로 비칠까 우려하는 반응이다.
율곡사업(전력증강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시작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군인아파트내에는 평소 볼 수 있던 이웃간의 담소풍경이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아파트주변의 한 슈퍼마킷 주인(53)은 『사건후 단지 전체에서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물론 웃음소리조차 듣기 힘들게 됐다』고 전했다. 국방부에 근무하는 모대령의 부인(37)은 『이웃끼리 길에서 마주쳐도 서로 죄나 지은양 눈길을 피하곤한다』며 『전방생활 13년동안 열두번이나 이사를 다니고 15평 군인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6개월이상 기다려도 불평 한마디없던 남편이 누구때문에 죄인 취급을 당해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같은 냉각분위기는 인사비리 문제가 처음 터져나온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해군아파트 주변에서 더욱 심해 군인들은 물론 군가족까지 외출을 자제하고 때아닌 몸단속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파트부근에서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는 이모씨(35·여)는 『사건이 보도되면서 하루 10여명에 달하던 손님이 3분의 1로 줄었다』며 『찾아온 손님들도 굳은 표정으로 왔다 돌아가곤 한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실내포장마차를 하고 있는 김모씨(40)도 『매상이 반으로 줄었다』고 울상지었다.
해군본부의 모소령(35)은 『한번 함정에 오르면 한달여동안 육지를 구경못하는 등 고생하며 복무하는데 이번 사건으로 해군제복을 입고 다니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라고 지탄했다.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공군아파트 주변도 차세대전투기사업(KFP) 기종변경과 관련,정용후 전공군참모총장이 로비의혹을 폭로한뒤 경비병이 정문을 지키며 출입자들을 엄격히 통제하는 등 군부대를 방불케 하고 있다.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공군중사는 『KFP사업이 워낙 거액의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당시 군내에서도 기종변경 경위에 대해 여러 소문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최고수뇌부의 결정사항이 박봉에 시달리는 공군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연합사의 모소령(33)의 말처럼 『하나회 등 사조직과 더불어 인사비리는 군내부에서 많은 풍문이 떠돌던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었다. 차제에 환부를 말끔히 도려내 능력껏 대우받는 군의 위상이 정립돼야 할 것』이라는 것이 이들 대부분의 한결같은 지적이자 바람이었다.<이훈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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