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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취임 이후…/시들어버린 “장미빛 백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고용촉진법안 등 의회반대로 좌절/중산층엔 오히려 증세… 공약도 어겨
오는 30일로 취임 1백일을 맞게 되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선거운동 기간중 『내가 만약 당선된다면 취임후 1백일은 미국 근대역사중 가장 생산적이고 폭발적인 1백일이 될 것』이라고 공언한바 있는 클린턴대통령 스스로 이 말의 허구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클린턴대통령은 묘한 발언을 했다. 그는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 신문인협회 연설을 통해 『대통령 임기가 3개월이 아니라 4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미 국민은 성급한 결과를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국민들이 참고 견뎌주어야 그의 선거공약을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악관이 최근 발행한 『백악관의 첫 1백일』이라는 32쪽짜리 홍보책자 내용도 공약의 이행정도 대신 매일매일의 백악관 일지로 일관돼 있다.
한마디로 첫 1백일동안 이렇다하게 내세울 것이 없다는 얘기다.
클린턴은 자신의 경제활성화 정책 가운데 단기처방에 해당하는 「직업창출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으나 폐기됐다. 올해 여름 대학생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을 포함,▲도로·교량의 보수 및 건설 ▲어린이 무료 예방접종 등 모두 1백63억달러 규모의 법안을 제출했으나 상원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의사진행 방해를 벌임으로써 결국 법안통과가 좌절됐다.
그의 경제쇄신책의 첫 작업이 실패로 끝난 것이다. 클린턴대통령은 앞으로 증세를 바탕으로 한 경제회복 및 재정적자 감소법안을 제출할 예정이지만 공화당으로부터 협력을 얻어내지 못하면 직업창출 법안과 같은 신세가 될 판이다.
부인 힐러리여사가 맡고있는 의료제도 개선안도 당초보다 몇개월 늦어지면서 국민들의 추가 세금부담이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져 앞날이 순탄치 않다.
그런 가운데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로스 페로 전대통령 후보의 공개 도전도 부담이 되고있다.
페로 전후보는 클린턴에 대해 『선거운동 때는 온갖 약속을 다해놓고 선거 후에는 등을 돌리는 여느 정치인과 똑같은 인물』이라면서 『클린턴의 경제쇄신 정책이라는 것은 암환자에게 아스피린을 처방한 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클린턴의 경제쇄신책이 『10달러의 세금을 거두어 재정적자 해소에는 1달러 밖에 안쓰는 안』이라면서 혁신적인 재정적자 방안을 다시 제시하지 않는다면 클린턴의 경제쇄신안은 거부돼야 한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클린턴은 경제쇄신안을 만들면서 이미 자신의 공약을 위배했다.
중산층에 대해 추가 세금부담을 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경제쇄신안은 실제로 중산층의 부담을 전제로 짜졌기 때문이다. 대외문제에서도 보스니아 사태에 적극 개입하겠다고 한 약속과 아이티난민의 강제송환을 막겠다고 한 약속도 어겼다. 언론과의 관계도 매끄럽지가 못했다는 평가다. 취임후 공식기자회견은 단 2회에 불과했고 백악관은 조지 부시 전대통령 때보다 접근이 더 어려워졌다.
현직대통령에 대한 방송매체의 호의적 보도사례도 훨씬 줄어,ABC방송의 경우 부시대통령 때는 86%의 호감을 보인 반면 클린턴에게는 38% 밖에 호의적인 보도를 하지 않았다.
클린턴대통령은 『변화를 창출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또 그같은 효과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기간이 필요한지 국민들이 현실적인 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경험상 1백일 안에 개혁을 해내지 못할 경우 나머지 기간은 더욱 어려웠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때 클린턴의 1백일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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