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국회 발언대] 盧, 광해군의 실패 되새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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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중앙일보(www.joongang.co.kr)의 이슈 토론 마당인 '나는 디지털 국회의원'에 네티즌 논객들이 올린 글들을 소개하는 코너를 신설합니다. [편집자]

지난 대선 때부터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나의 관심을 끈 인물이었다. 걱정 반 기대 반의 눈길로 盧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켜보면서 문득 조선왕조 제15대 군주였던 광해군의 행적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광해군은 부왕인 선조에게서 인정받지 못했으며 통과의례였던 명나라(지금으로 치면 미국?)에서의 공인까지 거부당했다. 그의 지지기반은 미약하기 짝이 없던 북인(열린우리당)이었고 정적은 막강한 서인(한나라당)이었다. 명나라의 압력으로 후금(後金) 정벌 파병(이라크 파병)에 동의하고 군대를 보냈지만 국익을 우선시한 특명을 내려 실리외교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미약한 정치기반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무리수를 서슴지 않던 북인의 조언을 행동에 옮기는 과정에서 악수(惡手)를 두고 궁지에 몰리게 됐다. 여기까지가 내가 보는 盧대통령과 광해군의 닮은 점이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애민정신의 실천력이라고 본다. 盧대통령도 서민 출신으로 서민을 위하는 마음이나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광해군처럼 몸으로 보여주는 애민정신은 부족한 것 같다.

광해군은 왕자 시절에 임진왜란을 맞아 선조를 대신해 피란처에서 조정을 운영했다. 전란 극복 과정에서 백성들의 조정에 대한 반감을 피부로 느끼고, 왕이 된 뒤 서인과 남인들의 정치공세에 시달리는 와중에서도 민초들을 위한 정책을 최우선시했다. 그래서 재위기간에 백성들의 지지는 조선조의 왕을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이 왕위에서 축출된 이유는 지배층의 지지기반 미약과 정치적 반대파와의 적절한 공생관계 설정 실패 때문으로 인식된다.

盧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광해군의 장점(민생 안정)을 본받고 단점(균형정치 실패)은 극복하는 혜안을 지닌 통치자가 돼달라는 것이다. 광해군도 자신과 코드가 맞는 북인 중심으로 정계개편을 하고 국정을 운영했지만 결과는 폐위였다. 만약 광해군이 민심까지 잃었던 군주였다면 연산군처럼 제 명에 살기 힘들었을 것이며 모든 역사서에도 폭군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盧대통령도 너무 무리한 방법은 강구하지 않았으면 한다. 국가 대승적 차원의 균형점을 찾는 것도 대통령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에 대한 사랑을 말로써가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윤혁희.중앙 디지털 국회 논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