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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吳世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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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세훈(43)의원은 발레 애호가다. 변호사 시절 직접 무대에 오른적도 있다. 고전발레의 거장 마리우스 프티파가 안무했던 '해적'이란 작품을 1994년 국립발레단이 공연할 때였다. 吳의원은 국립발레단의 운영자문위원장이다. 그는 지난해엔 발레평론가로서 이 작품을 무대현장에서 해설했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엔 여기자들을 초청해 '호두까기 인형'을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

발레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은 왜 고전발레에서 감동하는가.

안무자의 정신과 무용수의 몸이 아름답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충돌의 불꽃은 강렬하다. 안무자는 무용수에게 몸 움직임의 극한을 강제한다. 무용수는 불가능의 영역을 하나씩 정복한다. 안무자는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고전발레에서 안무자의 이상은 현실로 나타나고, 무용수의 현실은 이상으로 향한다.

한쪽 발끝을 땅에 꽂은 채 다른 다리를 바깥으로 높이 치켜들면서 완벽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의 몸. 공중으로 뛰어올라 잠시 머무는 듯하다 소리없이 착지하는 인간의 신체. 허공의 한 지점에 시선을 모으고 빠른 속도로 서른두번 회전하는 마술 같은 기교. 이런 장면들에서 관람객은 몸의 성취에 감격하고, 자기의 몸을 돌아보고,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느낀다.

발레에서 행복했던 吳의원이 정치에서 파탄을 선언했다. 따지고 보면 고전정치도 발레와 같이 이상과 현실이 만나는 영역이다. 현실의 자원을 가지고 지금까지의 현실에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吳의원이 4년간 체험한 정치세계는 그런 것과 딴판이었다. 정치인들은 안무자의 권력을 즐기다가 필요할 땐 무용수의 인기를 추구하곤 했다. 이상과 현실은 아름답게 충돌하기보다 추하게 겉도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정치판엔 어쩌면 그렇게 자기만 옳고 남은 틀리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많은가"라며 정치무대에서 내려왔다. 자신은 아무리해도 그런 확신범은 될 수 없다면서. 자기만 옳다는 확신범들이 설치는 정치 속에서 가능성의 예술은 불가능하다. 吳의원의 실패는 이걸 일깨웠다는 점에서 성공했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