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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교육혁명 중] 6. 대학 거품을 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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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학 도산 시대'.

지난해 일본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 말이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대학들이 줄을 이었던 현상을 가리킨다. 굳이 '시대'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전조는 2000년부터 나타났다. 당시 단기대(전문대) 17곳이 차례로 문을 닫았다. 급기야 지난해엔 4년제 대학마저 쓰러졌다. 대학도 경쟁력이 없으면 망한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 된 것이다. 일본에선 충격이 컸다. 절박해진 일본 대학들은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학 간 통합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재정의 효율과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생존 전략이다.

지난해 10월 도쿄(東京)상선대와 도쿄수산대가 합쳐져 도쿄해양대로 새로 출범했다. 2002년에는 쓰쿠바(筑波)대.도서관정보대 등 4개 국립대가 2곳으로 합쳐졌다. 전국적으로 20개 국립대가 10개로 통합돼 2,4년제 국립대 수가 99개에서 89개로 줄었다.

통합만이 아니다. 교수직의 거품을 빼는 것도 위기 타개책으로 시도되고 있다. '임기제 교수'가 그 중 하나다. 국립대의 경우 공무원 신분인 교수의 일부를 민간 계약직 교수로 채우기도 한다. 그것도 전문가로 인정받은 실무형을 모셔온다. 이들이 국립대에만 5천여명에 이른다. 실적에 따라 월급과 계약기간이 정해지므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사립대도 예외가 아니다. 시바우라(芝浦)공업대 대학원 공학매니지먼트연구과의 경우 교수 14명 가운데 6명이 임기제 교수다. 이 대학 기술경영(MOT)대학원 오카모토 시키(岡本史紀)실장은 "최신 실무 경험을 가진 교수를 뽑지 않으면 수강생들이 몰리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기업처럼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을 잘 받으려는 노력도 한다. 이미지를 높이려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론 이를 바탕으로 외부 투자자금을 끌어오자는 포석도 깔려 있다.

가장 먼저 평가에 응한 곳은 도쿄의 호세(法政)대. 지난해 2월 투자정보센터(R&I)의 장기우선채권등급 평가에서 'AA-'를 받았다. 또 와세다(早稻田)대는 지난해 7월 초우량 기업인 캐논과 같은 'AA+'를 따냈다.

중국에서의 대학 개혁은 일본보다 앞서 발빠르게 진행 중이다.

1992년부터 대학 간 통합이 활발하게 이뤄지기 시작해 지난해까지 4백90개 대학이 2백80개로 합쳐졌다.

우수 대학을 집중 육성하는 '선택과 집중'도 중국 정부의 핵심적인 대학개혁 정책이다. 93년부터 시작된 '211 프로젝트'를 통해 21세기 초까지 1백개의 경쟁력있는 중점 대학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둥베이스판(東北師範)대 순치린(孫棨林)교수는 "중점 대학에 들지 못하면 국가로부터의 지원도, 우수한 학생.교수의 모집도 어렵다"며 "경쟁력 없는 대학은 도태된다"고 지적했다.

이 프로젝트의 또 다른 목표는 세계 일류 대학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칭화(淸華)대다.

칭화대는 94년 세계 일류대학으로의 도약을 위한 계획을 수립, 27년에 걸친 장정에 나섰다. 그동안 성과 중 하나가 교수 계약제와 상호선택제다. 교수들의 연구역량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이 대학에선 전임강사급으로 임용되면 3년 내에 조교수가 돼야 하고 다시 5년 후에는 부교수가 돼야 한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교수와 학교는 서로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말만 선택일 뿐 승진하지 못하면 곧바로 퇴출이다.

국제합작처장인 허커빈(賀克斌)박사는 "철밥통과 함께 중국 사회의 병폐였던 다궈판(大鍋飯.'큰 가마밥'이라는 뜻으로 모두 함께 나눠먹는다는 의미)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칭화대의 이런 노력은 교수들의 경쟁력을 크게 높였다고 평가받는다. 강사를 포함한 이 대학 5천2백여명 교수의 62%가 42세 이하다. 이들 중 중국 과학원.공학원 회원이거나 뛰어난 연구실적으로 국내외 상을 받은 저명한 학자만 2백여명에 달한다.

영국과 호주를 보자. 이들 나라에서도 대학 간 합병은 상식이다. 이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고사(枯死)위기에 처한 대학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생존을 위한 변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는 우리의 대학 경쟁력은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

◇특별취재팀=정책기획부 김남중.강홍준.이승녕.하현옥 기자, 오대영.김현기 도쿄특파원, 오병상 런던특파원, 이훈범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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