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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룸살롱은 ‘마이킹’과 ‘쩐의 전쟁’ 중

중앙일보

입력

룸살롱 업계는 지금 ‘마이킹’ 사고와 전쟁 중이다. 6일 대구지방법원이 윤락형 유흥업소의 업주가 종업원에 지급한 700여만원의 선불금에 대한 강제 집행을 정지하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사건번호 2005가단84775호). 선불금을 줄 때 공증까지 했지만, 계약의 전제가 되는 윤락 행위 자체가 불법이므로 선불금도 무효라는 취지다. 윤락 유흥업소에서 종업원에게 주는 선불금은 업계에서 '마이킹'이란 말로 통한다.

룸살롱 업주들은 이 판결 이후 선불금 사고가 더 잦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종업원에게 5000만원을 떼인 한 업주는 “종업원들이 지금 잡혀도 선불금을 안 갚아도 된다고 보고 잠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과거와 달리 노골적으로 선불금만 받아 챙기는 예가 점차 늘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최근에는 여름철 휴가 기간과 맞물려, 유흥업체 밀집 지역 내의 경찰서에는 선불금 사기 사건 접수가 늘고 있다.

선불금은 이번 법원 판결이 나기 전부터도 룸살롱 업주들의 최대 골칫거리였다. 여성 종업원을 확보하기 위해 관행적으로 선불금을 지불해오면서 사고가 빈발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다양한 예방책과 대처법도 강구해왔다. 새로 취업한 종업원에게 선불금을 줄 때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의 근무 태도를 미리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다. 선불금을 줄 때도 각서나 차용증을 쓰고 공증까지 받는 경우도 많다. 업주들끼리는 선불금만 받고 도망가는 ‘전과자’들을 올린 블랙 리스트를 공유하는 등 정보 교환까지 한다. 그래도 선불금만 받아 챙기는 사고가 늘면서, 종업원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수배령을 내리게 하는 강경한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성매매와의 전쟁을 선포한 성매매특별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의 입법 목적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이 법 10조는 성매매를 근거로 한 채권은 그 형식이나 명목에 관계없이 이를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판결이 어떤 경우에서도 선불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해석한다. 장현우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세)는 “과거의 판례들을 보더라도, 선불금을 지불할 때의 상황에 따라 선불금의 법적 구속력은 천차만별이다”라고 말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해당 유흥업소가 윤락 행위를 하는지 여부다. 즉 여성 종업원들이 이른바 ‘2차’를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만일 불법 윤락행위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선불금을 주는 업주와 받는 종업원 사이에는 채권채무 관계가 분명히 성립한다. 이런 경우에는 성매매 근절을 목적으로 한 성매매특별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법원이 중시하는 두 번째 요소는 종업원이 룸살롱에 하루라도 근무를 했느냐 하는 사실 관계다. 이번 판결의 경우, 업주의 강제집행에 대해 정지 신청을 낸 종업원은 해당 업소에서 윤락 행위를 중개하는 것을 알고 하루만 근무하고 그만뒀다. 반면에 하루도 근무를 하지 않은 경우는 처음부터 사기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업주들도 곧바로 고소한다. 바야흐로 지하 경제의 상징 격인 선불금을 둘러싼 법정 소송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마이킹=선급금(先給金)이라는 뜻의 속어. 특히 룸살롱에서 접대 여성 종업원들에게 옷값 등의 명목으로 제공하는 전속금이다. '마에킨(前金)'이라는 일본어를 쉬운 발음으로 잘못 쓰고 있는 것이다. 보통 몇 백만원 정도이지만, 고급 룸살롱,속칭‘텐프로’(10%) 업소에서는 업소의 지명도나 당사자의 인기에 따라 1억원까지 호가한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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