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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하의자동차문화읽기] 현대·기아차 이젠 브랜드 가치‘가속’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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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대·기아자동차가 미국의 권위 있는 자동차 평가 기관인 스트래티직 비전이 조사한 2007년 품질조사에서 19개 평가부문 중 5개 부문의 1위로 뽑혀 조사 대상 메이커 가운데 수위를 차지했다.

 초기 품질과 만족도를 조사한 것이라 내구성·중고차 가치 등 총체적인 소비자만족도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로라하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완전 경쟁하는 미국에서 소비자만족도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진입 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실수와 어려움을 20여 년이 지나 훌륭히 극복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이제 현대·기아차는 앞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80, 90년대와는 달리 21세기에는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맞추고자 거의 모든 산업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고 있다. 디자인과 품질도 상향 평준화됐다. 게다가 인터넷 같은 전달매체의 발달로 소비자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이로 인해 제품별 디자인·가격·품질보다 메이커의 브랜드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 미국에서 현대·기아차의 소비자만족도가 높다는 것은 싼 맛에 구매한 소비자들이 의외로(?) 상당한 수준의 품질에 놀라 만족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기대 수준이 올라가면 소비자 만족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 경쟁 메이커들이 상대적으로 더 좋은 제품을 내놓으면 어느 순간 순위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단순한 제품 가치를 넘어 더 높은 가치, 즉 브랜드 가치를 소비자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브랜드 가치는 그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이 열광 하는 수준을 의미한다. 브랜드 가치는 그 메이커의 이름 이상이 필요하다. ^고객 충성도 ^기업 인지도 ^이미지·품질·성능·디자인 등이 모두 포함된 핵심 자산이다.

  항상 시장 트렌드에 맞춰 적절한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는 GE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NPS(순 지지자 점수:Net Promoter Score)라는 것을 전 사업부에 집중 실시했다. 기존 고객에게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GE의 제품과 서비스를 당신 주위에 추천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고는 ‘아니요’( 0점)에서 ‘매우 그렇다’(10점)까지 점수를 매긴다. 고객에게 단순히 GE의 제품과 서비스에 만족하냐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고객이 다른 사람에게 추천한다는 것은 자기의 보증과 책임이 들어가므로 열광적인 지지 없이는 높은 점수가 나올 수 없다.

 그렇다면 50%의 시장점유율로 한국에서 높은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 현대차가 세계 시장에선 어떨까. 평균수준의 품질과 디자인, 많은 옵션 등으로 저렴한 가격 대비 좋은 가치를 지녔다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분명 인기는 있으나 할인점에서 잘 팔리는 제품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21세기 들어 가속화하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자동차 업계는 고급차와 저가차로 빠르게 분화하고 있다. 상층부 쪽으론 도요타·혼다·폴크스바겐 등이 확고한 품질과 신뢰로 앞서 나가고 저가 시장은 중국·인도 업체들이 무섭게 잠식해 들어 온다. 이제 겨우 세계적인 대중브랜드 기본에 오른 현대·기아차의 갈 길은 참으로 멀기만 하다.

황순하 <자동차 평론가, ge코리아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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