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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재야 호흡맞추기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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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재야」는 군사독재와 권위주의체제 아래서 끈질긴 생명력을 키워온 정치세력이다. 재야의 힘은 도덕성에 있다. 정통성 약한 체제의 바깥에서 탄압을 감수하며 정통성회복을 요구해왔다. 그런만큼 그들의 민주화운동은 때로는 빛과 소금에 비유돼왔다. 지금까지 정부와 재야는 「앙숙」관계로 서로 대면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적대적인」 양자관계가 김영삼정부 출범후 변화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양자의 대화와 접근 움직임은 하나의 현상으로 굳어져 재야가 대거 체제로 편입해 들어오기에 이르렀다.
◎“운동권” 인사 속속영입/이재오씨 포함 10명 기용 추진/김덕룡정무·김정남수석이 창구역
여권지대인 청와대·정부기관에 재야인사들이 속속 진입하고 있다. 문민정부가 일으키는 또하나의 변화로 「바뀐세상」을 실감케 하는 사례들이다.
○…김정남사회문화수석비서관에 이어 재야인사 김영준씨가 재야담당비서관(1급)으로 청와대에 들어왔다. 인권변호사로 경실련에도 깊이 관여했던 정성철씨가 정무1장관보좌관(차관급)으로 변신했다. 또 노동부·환경처 산하기관 등 정부영역에는 이재오·이신범·최혜성씨 등 재야인사 10여명의 영입이 추진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미 농민투자 배종열 전농회장을 만났고 계속 재야쪽에 팔을 벌이고 있다. 정부 재야간 물리적 거리가 좁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청와대 김영준재야담당비서관(46·서울)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온건운동가 출신. 용산고를 졸업한 후 연세대경제학과 4학년때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돼 1,2심에서 징역15년을 선고받았다가 이듬해 대법파기환송으로 풀려났다.
이후 한국노동문제연구원(78∼80년) 등에 근무하다 91년엔 이재오사무총장 밑에서 민중당 사무차장을 4개월간 맡았었다. 김씨는 민중당이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운영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관계를 정리했다고 한다. 김씨는 91년 8월 동료들과 새로운 사회변혁방법론을 찾기위해 「나라정책연구실」이란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회장을 맡아왔다. 김씨는 행동가라기보다는 연구가. 선거엔 뛰어든 적이 없고 보험회사(대한화재해상)에 근무하고 보험대리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번 비서관 임명은 김정남수석과의 개인적인 교류관계 때문. 사회문화비서실에는 김씨외에 10명 정도의 재야 소장파가 4∼5급 행정관으로 청와대에서 일하게 됐다.
이재오씨 등 정부에 들어와 개혁운동을 하려는 그룹은 재야투쟁 경력이 상당히 치열했다. 이씨(49)는 6·3세대(당시 중앙대경상대)출신. 70년대부터 반유신활동·남민전 관련 등으로 옥살이를 거듭했고 89년엔 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으로 범민족대회를 주도하다 또 징역형을 받았다.
91년에 민중당사무총장이 됐고 지난해 3월 총선때 서울은평을에서 출마,제도권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씨는 환경처산하 자원재생공사이사 등에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신범씨는 서울대법대출신으로 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됐던 인물. 이씨는 이후 일찌감치 제도권에 들어와 지난해 총선때는 서울 강남을에 출마했었다. 때문에 정통재야와는 거리가 있으나 수난경력으로 보자면 그의 정부권진입은 의미가 있다. 노동부산하기관의 연구원 등으로 검토되고 있다. 최혜성씨는 서울대철학과출신의 6·3세대. 지난해 대선때 「신한국창조를 위한 시민연합(신한연)」에서 활동했었다. 신한연은 김정남사회문화수석이 김영삼후보를 지지하기위해 재야인사들을 규합했던 모임. 최씨가 운영하던 「한국지식사회연구소」는 신한연의 모체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야인사 영입작업은 김덕룡정무1장관. 김 수석 등이 중심창구가 되어 진행되고 있다.<김진기자>
◎가슴연 대화 잇따라/전교조·전농·전노협 등과 대좌/“개혁힌트제공”“말통한다” 서로 평가
김영삼정부에 몇몇 재야인사가 참여하는가 싶더니 어느덧 정부와 민자당,그리고 재야사이의 거리가 눈에 띄게 좁혀져가고있다. 그동안 서로를 야멸차고 몰강스럽게 대했던 눈들이 한층 부드러워진 것이다.
우선 대통령이 직접 재야단체의 지도자와 만나 의견을 듣는 「일찍이 없었던 일」(파천황)이 발생했는가 하면 역시 사상 처음으로 당정과 재야가 현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김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시만해도 지명 수배중이었던 배종렬 전국농민총연맹(전농)회장과 강춘성 전국농민단체협의회회장 등을 만나 쌀개방문제 등 농촌현실에 대해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만남은 비록 다른 농어민대표 15명과 함께 이뤄진 짧은 간담회였지만 재야로선 「달라진 대통령」을 실감하는 눈치였다.
정부와 재야의 대화는 좀더 일찍 시작됐다. 그 자신이 재야출신인 김정남 대통령사회문화수석은 3월초 광화문에서 시위를 벌였던 빈민연합시위대 대표 5명을 청와대로 초청,이야기를 나눈데 이어 같은달 18일에는 노동부와 전국노동자협의회(전노협)가 정부청사에서 대면했다.
이와 관련,전노협측은 『정부가 우리를 대화상대로 보는 것만해도 엄청난 변화』라고 평가했다.
공보처도 2일 재야단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진보적 입장에 서서 정부측과 대립적 관계에 있던 언론노조연맹(언노련)과 만났다. 오인환장관은 이날 권영길 언노련위원장 등 간부들에게 새정부의 언론정책을 상세히 설명했다. 특히 오 장관은 김영삼대통령이 이날 밝힌 「당근과 채찍의 구시대적 언론정책 배격」에 대해 해설하고 언론자율화를 약속했다. 언노련측은 6공에서 해직됐던 기자들의 복직을 요구했고 정부는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교육부도 내주중 전국교직원노조(전노조)와 처음으로 만날 계획이다. 전교조인정 및 해직교사 복직문제가 당장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양측의 관계는 전례없이 우호적이다.
지난달 중순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과 간담회를 가졌던 민자당도 지난주 재산공개파문으로 큰 홍역을 치르는 와중에 전교조측 등과 만났다. 강삼재 제2정책조정실장은 이에대해 『개혁정책의 힌트를 얻기위해 재야단체와 간담회를 갖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이 재야의 의견을 듣겠다고 적극 나섬에 따라 재야측도 「이제 여당은 적군이 아니라 말이 통하는 상대」로 여기는 등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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