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공개」 파문을 보며…/김종석 홍익대교수·경제학(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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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단죄」는 민주적 절차로/과정 무시땐 “억울하다” 빌미 제공/투자·투기개념 명확히 정립 할때
참으로 시원한 개혁의 바람이 불고있다. 문자 그대로 30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듯한 후련함을 많은 국민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과거 정권들도 새시대를 약속했지만 이번에는 무엇인가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을 주고있다. 그것은 물론 새정부가 민주적 권위를 지닌 정부이기 때문이고,그 민주적 권위는 민주적 절차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이것이 지금 정부가 과거 정권과 다른 점이다.
그러나 과감한 개혁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무한한 갈채와 성원을 보내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제 드디어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자부해도 되는가. 우리사회도 이제는 성숙한 민주적 시민사회가 되었는가. 작금의 재산공개 파문과 그 수습과정에서 여론의 흐름을 보면서 우리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기본적 가치체계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를 생각하게 된다.
○여론재판 비판 우려
민주주의사회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국민 기본인권의 보장을 위한 정당한 절차(due process)의 보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원리가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는 한 시민의 기본권이 제도나 다수의 힘에 의해 유린될 때 나를 포함한 사회의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유린의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당연한 논리 때문인 것이다. 열명의 도둑을 놓쳐도 한사람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바로 내가 보호받기 위한 것이다. 내가 믿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현실에서 존중받지 못할 때 나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사람들의 잘잘못을 가릴때 정당한 절차가 보장되어야 하는 더욱 중요한 이유는 정당한 절차없이 단죄할 경우 파렴치범들까지도 억울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절차가 정당하지 않으면 무슨 명분이든 개혁의 설득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올바른 옥석구분을 위해서도 정당한 절차는 필요한 것이다.
일부 공직자가 과다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었다. 과다한 부동산을 가지고 있으니 투기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시장경제 원리 확립
투기는 분명히 반사회적 행위다. 더구나 직위·내부정보를 이용하였다면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이고,공직자가 아니더라도 이는 엄중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그러나 투자와 투기의 구분은 예술과 외설의 구분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것을 정의하는 순간 그것의 문제점이 항상 더 크기 때문이다.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 개념과 논리로 남들을 비난하기 시작한다면 우리사회는 모두 패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부정부패로 추방하고 윗물맑기운동을 하자는 것은 우리사회의 단결과 응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어느 사회든지 단결하기 위해서는 뭉쳐야 하는 기본 이념과 지키고자 하는 가치체계가 있어야 한다. 우리사회를 유지하고 지키는 기본적 가치체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인 것이다. 이러한 절차와 원리가 흔들릴 때 우리사회의 가치체계가 혼란되고 응집력이 손상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개혁이 너무 중요한 것이고,또 반드시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과정은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거친 것이어야 한다. 길이 질고 험할수록 발걸음을 내디디기전 내디딜 곳을 미리 살펴야 하는 것이다.
○내디딜곳 미리 점검
공직자 재산공개파문이 우리에게 던진 과제는 우리사회가 민주주의적 절차와 시장경제원리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그리고 그러한 가치체계를 유지 발전시킬 능력이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바로 이러한 기본질서와 가치체계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문민정부의 수립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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